(눅19:28-36)
앞서서① – (목표 결정)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앞서서 가시는 예수님의 걸음은 목표가 결정된 걸음이다. 말씀을 하신 후 말씀이 결정한 목표가 확실한 걸음이다. 앞서 가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목표가 확실한 삶이다. 역사는 사람의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표를 위해서 존재한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앞서서② – (방향 결정) 목표는 방향을 결정한다. 방향이 불분명한 삶은 이미 실패한 삶이다. 방향이 분명할 때 목표에 정확히 도달하게 된다. 방향을 지키는 것은 끊임없는 방해를 극복하는 것에 의해 가능해진다.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상당한 세월 동안 요지부동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앞서서③ – (계획 결정)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반드시 구체적 실행 계획이 있어야 한다. 계획은 인간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인간은 계획을 세울 수는 있으나 계획의 완성을 보장할 수는 없다. 하나님만이 계획의 완성자가 되신다.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계획이다. 천지가 없어져도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
모르는 장소① – 제자 둘을 예수님이 보내신 장소가 있다. 제자들이 계획하거나 결정한 장소가 아니다. 제자들은 몰랐던 장소다. 장소는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삶의 요소다. 그 요소의 결정권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내가 정한 장소가 있고 하나님이 정한 장소가 있다. 장소는 언제나 계획에 의하여 정해진다. 장소는 조건과 환경에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중요하다.
모르는 사람② – 예수님이 보내셔서 만나게 하시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만난 적도 본적도 없는 사람이다.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알고 있는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야만 할 때가 많다. 하나님은 아는 사람만 만나게 하시지 않고 끊임없이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하셔서 새로운 일을 하신다.
모르는 상황③ – 나귀를 가져오기 위해 가는데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지의 시간을 향해 가는 인생이 어떤 상황에 부딪히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의 나귀를 끌고 오라는 명령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기 때문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순히 말씀대로 하라는 것이다. 말씀대로 대답했을 때 상황은 간단히 해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말씀대로 가면 말씀대로 보인다 – 보여서 말씀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가니까 보인 것이다. 가능해서 말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하니까 가능한 것이다. 납득이 되고 가능성이 확인되고 이해되기 때문에 말씀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대로 한 결과가 안보이는 것이 보이고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고 이해되지 않은 것이 이해 되는 것이다.
아무도 몰랐던 나귀 – 아무도 몰랐던 나귀를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 아무도 몰랐던 나를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 이미 알고 계시던 주님이 때를 따라 찾으셨고 부르신 것이다. 나는 주님을 알고 있었나 전혀 몰랐었다. 그러나 주님은 알고 계셨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1:5)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 (주인 되심) 나귀 주인에게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나귀의 주인이 주님이시라는 말이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진정한 주인이시다. 심지어 그 주인 조차도 주인이 하나님이시다. 나귀가 사람의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나귀의 주인인 것처럼 사람이 하나님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의 주인인 것과 같다.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 (사용 하심) 나귀가 주인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나귀를 사용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만물에 대하여 소유권과 사용권을 갖고 계신 것이다. 만물이 스스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가 소유하시고 사용하는 것이다.
나귀와 예수님의 공통점 – 나귀는 남의 짐을 특히 주인의 짐을 짊어지는 것이 임무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짐이 아닌 하나님이 명령하신 인간의 죄의 짐을 짊어지고 가시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가시기 위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 인간은 수고와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무거운 인생을 살아간다. 죄와 저주와 사망의 짐을 짊어지고 평생을 살다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그 짐을 짊어져 주시는 예수님이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면 나의 짐이 주님께로 옮겨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