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산뜻한 승리는 없었다. 최후까지 진흙탕에서 굴러가며 발버둥치면서 전력을 다한 뒤에야 겨우 성취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본 기업 부활의 상징이 된 후지필름의 고모리 시게타카 회장의 말이다. 

그가 사장에 취임한 2000년 후지필름은 절정이었다. 주력 사업이던 사진 필름 매출은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경쟁자인 코닥마저 제쳤다. 그러나 절정의 순간에 위기가 다가왔다. 디지털카메라 보급으로 필름이 필요 없게 됐다. 코닥은 도산했다. 그러나 후지필름은 필름 제조로 축적한 기술을 화장품과 의약품 등 다른 사업에 응용하며 새 시장을 개척해 ‘본업 소멸’ 위기를 극복했고, 오히려 매출이 급신장됐다.   

고모리 회장은 “진짜 승부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태에서 시작된다. ‘이건 풀릴 것 같지 않다’ ‘이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렇게 생각한 때에 역으로 무엇인가 극복해내려고 생각하는 것, 저는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노력의 진짜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것으로는 노력했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경영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 네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읽어야 한다. 리더는 한정된 시간과 정보만으로 기업이 처한 상황을 파악해 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읽어야 한다. 둘째는 구상(構想)이다. 읽었으면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작전을 짜야 한다. 셋째는 전해야 한다. 위기를 헤쳐나가는 기점은 경영자의 강한 의지이지만, 혼자서는 안 된다. 의지를 조직 구석구석에 전파시켜 위기감을 공유하고, 사원 각자가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은 실행이다. 경영자는 평론가나 학자가 아니다. ‘현상이 이렇다. 장래는 이렇게 된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를 입으로만 떠들면 안 된다. 결단 했어도 실행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경영자가 되고 나서 신(神)적 수준의 필요성에 절감했다.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한 것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돼서 절대 틀리지 않는 판단력을 갖춘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산처럼 쌓여 있고 기한도 정해져 있다. 잠 못 드는 밤이 많았다.”

“가장 해선 안 되는 일이 결단을 미루는 것이다. 한다고 결정했으면 스피디하게 역동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이것은 머리가 좋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야성적인 예리함이나 직감, 파워가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머슬 인텔리전스(muscle intelligence·근육 지능)’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불이 났을 때 어떻게 도망쳐야 할지, 이런 것은 교과서에 쓰여 있지도 않고 학교 성적과도 관계없다.”

위기 시 리더의 덕목 네 가지 중 ‘전달’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톱의 메시지가 조직 곳곳까지 전해지지 않으면 조직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전쟁터에 나가는 군대를 생각해 보라. 왜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야만 한다. 전투 중에 갑자기 알려서는 안 되며, 그전에 미리 알려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이것을 하면 된다’는 것만 확실해지면 인간은 노력하게끔 돼 있다.”

그는 경영은 전투라고 강조한다. “승자와 패자가 있다는 룰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사회의 원리이다. 라이벌이나 적에 대한, 시대 흐름에 대한, 운명에 대한, 곤란에 대한, 장애물이나 인습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싸움이다. 그 결과로 영고성쇠와 진보, 퇴보가 일어난다. 승자와 패자가 있다는 것은 때로는 잔혹한 현실이지만 그러나 싸움을 계속 피할 수는 없다.

경쟁이 인간관계를 삭막하게 만들고 약자가 피폐해지는 세상을 조장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건 경쟁 때문이 아니라, 덕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교 운동회에서 1·2·3위를 정하지 않아도(일본에는 운동회에서 달리기 할 때 순위를 매기지 않거나 함께 손잡고 동시에 들어오도록 하는 곳도 있다), 이지메는 계속해서 일어나지 않는가? 경쟁이 나쁜 것이 아니라, 도덕 교육, 인성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가슴이라고 하면서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는 그는 50년 전 읽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립 탐정 필립 말로의 대사를 말한다. ‘터프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상냥하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이 없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살아남아야 하는 숙명 앞에서 이겨서 살아남는 이유와 목적이 결국 문제가 되고 해답이 된다. 살아남는 것 이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 것이 인간의 비극의 원인이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기 위해 오시지 않고 죽기 위해 오셨다. 인간에게 살아야 하는 영원한 이유와 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죽어야 사는 것을 보여 주셨다. 기업을 기사회생 시킨 불신자 기업인의 결론이 여기에 도달하고 있다. 죽지 않기 위해 치열한 경쟁으로 치닫는 비인간화가 비극의 원인인 것이다. 죽어야 사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여 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