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11-12)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 –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 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1:25, 27-28) 인간 관계에서 비교하여 월등한 사람도 있고 열등한 사람도 있다. 열등한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고 월등한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 구원은 생명의 끝, 사망에 부딪힌 인생이 하나님에 의해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것을 말한다. 유한한 인생의 끝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삶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유한한 인생의 가능성의 끝에서 무한한 하나님의 가능성이 시작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시작의 필수 조건이 인간의 끝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창조하시는 과정이 그렇다. 아무것도 아니 흙을 빚어서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그 안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신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 죄의 삯은 사망인 인생의 운명은 그 결과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혈기왕성한 젊음도 시간이 흐르면 다 소진되어 소멸된다. 왕성한 체력도 다 소진되어 연약한 존재로 생을 마친다. 완벽한 조건으로 가능성이 넘쳐도 결국에는 그 가능성도 소멸된다. 결코 영원하지 않다. 출생한 존재는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세상에 온 인생은 불가항력적으로 세상을 떠날 때가 온다. 필연적으로 끝이 다가오는 것이다. 육신적 끝이 오기 전에 인간적 가능성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시작해야한다.
믿음이 필요한 영역(범위)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믿음이 필요한 영역은 보이는 영역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이라는 말이요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하여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을 때, 얕은 곳은 인간의 지식과 능력으로 가능한 영역이지만 깊은 곳은 안간의 지식과 능력으로 불가능한 영역이다. 믿음이 필요하고 순종이 필요한 영역은 가능한 영역이 아니라 불가능한 영역이다.
믿음의 시작은 Zero에서의 시작이다 – 믿음은 인간의 부족한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실존을 인정하고 하나님에 대한 전적 의존을 말한다. 인간은 없었던 존재이며 없어질 존재이다. 오직 창조주에 의하여 존재하는 시작부터 하나님께 Dependent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고 Independent하려 한 것이다. 하나님 없이 존재하려 한 것이 죄인 것이다. 인간 자신이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하여서만 존재가 가능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믿음의 시작은 은혜의 시작이다 – 인간 자신뿐 만 아니라 만물의 존재는 하나님에 의하여 존재 하고 있다. 하나님없이 존재할 수 없다.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것을 알고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온전히 맡겨진 삶을 사는 것이다. 맡기지 않아도 그분의 것이다. 하나님이 소유주 되심과 주관자 되심을 알고 신뢰하느냐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삶을 사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가능한 삶이 되기도 하고 불가능한 삶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태생적, 결과적 ZERO 인생이다 –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서 존재하는 만물은 태생적으로 없었던 존재요 하나님에 의하여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는 존재이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은 ZERO였던 존재다. 흙 위로 걸어 다니는 흙덩이 일 뿐이다. 창조주는 지으신 만물을 언제라도 없어지게 할 수 있고 있게 할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모든 것이 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하다. 가능과 불가능이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두가지 믿음 – 믿음은 두가지가 있다. 인본적 신앙과 신본적 신앙이다. 인본적 신앙은 자기 기준, 자기 방법, 자기 능력, 자기 결정에 의하여 신앙 생활하는 사람을 말한다. 신본적 신앙은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결정에 의하여 신앙 생활하는 사람을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인본적 신앙 생활은 종교 생활이다. 신본적 신앙 생활이 신앙 생활이다. 종교 생활은 내가 기준이 되는 신앙이다. 신앙 생활은 하나님이 기준이 되는 신앙이다.
불가능한 명령에 아멘하는 신앙 – 신본 신앙은 하나님의 모든 명령 앞에 무조건 아멘한다. 하나님이 그 안에서 행하시는 사람이다.(빌2:13)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주저않고 아멘했고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에 조건없이 아멘했다. 불가능이 전혀 부담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 의하여 지배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지배되는 사람은 이미 그 사람의 외적 환경까지 지배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미 불가능이 없는 삶이 된다.
START가 STANDARD가 된다 – 신앙 생할 시작할 때 어떤 기준으로 시작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인간적 기준으로 시작하면 어디서나 인간적 기준으로 신앙 생활한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시작하면 어디서나 하나님 기준으로 신앙 생활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용이 아니다. 삶의 기준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자기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 믿는다는 것은 거짓이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하나님 믿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