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8)

같은 방향을 가도 얼마든지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 같은 교회를 다녀도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이 있고 넓은 길을 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천국을 가는 사람이 있고 지옥을 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오고 가는 것이 부르심에 의한 것이냐에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에 의하여 오고 간다. 부르심에는 구원을 위한 생명적 부르심이 있고 복음 증거를 위한 사명적 부르심이 있다. 오고 가는 삶의 형태에서 이미 구원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누구의 뜻에 의하여 오고 가는가 –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삶이 있고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는 삶이 있다. 같은 길을 가면서 복의 길을 가는 사람이 있고 저주의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차이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불순종 하는가에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에 의하여 오고 가느냐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무시하고 오고 가느냐에 의하여 정반대의 운명이 된다.

오고 가기 위한 전제 조건 – 창12:1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신다. 거기를 떠나야 여기로 올 수 있고 여기를 떠나야 거기로 갈 수 있다. 오든지 가든지 필연적인 전제 조건은 “떠나는”것이다. 애굽을 떠나야 광야로 나갈 수 있고 과거를 떠나야 현재로 올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향하여 이전 일을 기억지 말고 옛적 일을 생각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과거를 떠나지 않으면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살고 있는 것이다. 

떠나는 의미 – 나의 선택과 결정이 가능한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서만 생존이 가능한 삶으로의 이동을 말한다.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려면 전토와 부모 형제 자식과 집을 버려야 한다고 하시는 말씀도 맥락을 같이한다. 생존 기반이 인간적 관계에 있느냐 하나님 관계에 있느냐가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물질 중심에서 말씀 중심으로 바뀌는 것이다. 

떠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 – 기존의 생전 기반을 포기하고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는 것은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설득이나 설명, 강제 수단에 의한 강요로도 가능한 것이 아니다. 별로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와 같다. 발견한 사람은 지체없이 전 재산을 팔아 밭을 사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주변에서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 시켜도 본인 스스로 확인한 바가 없기 때문에 결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좇아가는 구체적 방법 – 목자를 따르는 양은 때마다 푸른 초장의 상태와 쉴만한 물가를 확인하고 나서 따르는 것이 아니다. 초장의 상태 시냇물의 상태보다 목자 자체를 신뢰하기 때문에 상황과 환경 조건에 구애 받지 않고 목자를 따르는 것이다. 신앙생활 또한 그렇다. 상황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말씀)을 좇아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인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갈 바를 몰라도 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떠날 수 있는 결정적 증거 – 막연한 짐작으로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 없다.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현재의 생존 조건보다 비교 불가능한 확실한 하나님의 보장을 확인해야 한다. 현재의 성공과는 비교가 안되는 하나님의 상급을 확인해야 하고 현재의 행복과는 비교가 안되는 천국의 기쁨을 확인해야 한다. 짐작으로 믿는 믿음은 추상적이고 불확실한 추측에 불과하다. 믿음은 추측이 아니고 확률도 아니다. 결정적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타인의 간증이 아닌 본인의 간증이 있어야한다. 

상황적 체험과 존재적 체험 – 예수님 공생애 당시 허다한 무리들이 기적을 직간접으로 체험했다. 그러나 삶이 변화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상황적 체험에서 당연히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고백하고 인정한다. 그러나 상황적 체험이 믿음일 수는 없다. 반드시 존재적 영적 체험으로 내 심령 안에서 체험되어져야 한다. 객관적 상황에서의 체험이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것은 내 안에서의 영적 체험으로 예수님이 내 안에서 나를 주장 하셔야 한다.  

존재 변화와 행동 변화 –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는 사람은 그 행동에서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증명하게 된다. 마귀의 자녀는 마귀의 지배에 의한 행동을 하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지배에 의한 행동을 한다. 이것은 피할 방법이 없다. 산 위에 있는 불빛을 숨길 수 없고 천지가 없어져도 이루어지는 말씀의 성취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행동에는 예수 만난 증거가 표현된다. 

세상 중심에서 교회 중심으로 – 육신적 생존 기간의 중요성은 천국 소속 확보 때문이다. 육신의 생존 기회가 영원한 천국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천국 소속이 확실한 사람은 세상에 머무는 동안 교회 중심의 삶이 확실하다. 천국의 확실성은 교회 중심의 삶으로 확인된다. 이 땅에 있는 천국의 모형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안에, 예수 안에 언약 안에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확실한 교회 중심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