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7)

미래는 필요의 문제가 아니라 숙명의 문제다 – 노아가 미래에 대한 경고를 받고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되는 이유가 하나님의 확정된 미래가 다가 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인류 역사가 시작하자마자 심판이 있었고 이를 준비하게 하신 이유는 인류의 궁극적 종말(재림)이 있기 때문이었다. 시작이 있는 이유는 끝 때문이다. 시작은 끝을 위한 준비의 시작이다. 일단 시작된 인생은 불가항력적으로 끝이 다가오고 있다. 끝을 위한 준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대홍수 심판 예고와 대환난 재림 예고 – 홍수 심판에 앞서 많은 사람 중에 유일하게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의 기회를 얻는다. 필연적 심판에서 반드시 구원의 기회를 주시는 사람이 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대환난에 앞서 역시 하나님은 구원받은 사람을 구별하시는 인치는 사건이 있게 된다. 계시록 7장에서 대환난 직전 14만 4천명에 대한 인치는 사건이 나타난다. 그리고 8장으로 넘어가면 세계의 3분의 1이 해를 입는 대환난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카운트와 나의 카운트 – 하나님의 카운트는 인 맞는 사람만 해당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해당된다. 다니엘서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과 벨사살 왕을 카운트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최종 심판주 되시는 하나님은 인류 전체를 카운트 하신다. 이를 대비한 믿는 자의 지혜는 남을 카운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카운트 하는 것이다. 남의 인생에 대한 카운트는 남의 인생을 결정하고 나의 카운트는 나의 인생을 결정한다. 

종말의 필연성 – 종말의 도래를 인정하든 부정하든 홍수가 오고 죽음이 오듯 불가향력적으로 다가온다. 문제는 인정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잇고 부정하고 준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인정하고 준비한 사람은 준비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고 부정하고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준비하지 않은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인정하든 부정하든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영향하에 살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전반적 스케줄의 영향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종말 준비 – 종말 준비하는 사람과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미래에서는 물론 다르지만 현재 상황에서도 분명히 다르다. 준비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철저히 현재 중심의 사람을 살고 육신 중심의 사람을 산다. 육신적 본능적 삶은 자칫 짐승적 수준의 삶으로 전락이 쉽다. 윤리적 타락이 수반하게 된다. 그러나 준비하는 삶은 철저히 미래적이다. 최종적 결과를 위해 전력투구하는 삶을 산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준비에 전념한다. 

믿음의 유무가 미래의 유무다 –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미래가 있는가 없는가를 알 수 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미래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미래이다. 이 사람은 현재보다 미래가 중요한 삶을 산다. 믿음이 없는 사람의 미래는 인간적 계획에 의한 미래로서 하나님의 계획과 무관한 미래이다. 이 사람은 미래보다 현재가 중요한 삶을 산다. 현재의 중요성은 미래 때문이다. 현재만이 미래를 준비하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시간은 철저히 현재이다 – 현재의 믿음만이 살아있고 유효한 믿음이다. 현재의 믿음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의 믿음만이 미래를 현재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결정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다. 현재 미래를 결정하고 영원을 결정한다. 믿음은 미래의 결과로 나타난다. 현재 믿음이 미래, 영원을 결정하며 그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영원히 한 번뿐이다. 천국에서의 영원, 지옥에서의 영원이다. 

현재와 미래의 간격에 대한 오해 – 무의식 중에 잠재하는 오해가 있다. 현재와 미래에 시간적 공간의 간격이 있다는 착각이다. 현재와 미래, 오늘과 내일의 사이에 비어있는 공간이 없다. 오늘이 끝나는 시점(12시)이 내일이 시작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오늘이 현재이며 내일이 미래이다. 오늘과 내일은 떨어져 있지 않고 붙어있다. 손바닥과 손등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것과 같다. 생명과 사망 역시 붙어있다. 생명과 사망의 간격은 그야말로 찰나이다. 

믿음과 구원은 철저히 현재적이며 미래적이다 –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다”(눅19:9)고 하셨고,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고 하셨다. 현재 확실해야 미래가 확실하다. 미루는 사람은 미래가 없는 사람이다. 오늘 결단하면 미래가 있고 결단을 미루면 미래가 없다. 현재의 역할은 미래가 있게 하는 것이다.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존재 가치가 없다. 

오늘이 먼저이고 내일은 나중이다 – 오늘이 없는 내일은 없다. 먼저와 나중이 바뀔 수 없는 것과 같이 오늘과 내일은 바뀔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을 무시하고 내일로 미루는 사람은 내일이 없는 사람이다. 내일은 오늘에 의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을 놓치면 내일을 놓치고 내일을 놓치면 영원을 놓치게 된다. 바디메오가 여리고에서 나가시는 예수님을 그 때 만나지 못했으면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언제나 마지막이다. 오늘은 오늘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