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5)

말씀으로 지어진 모든 세계(히11:3) – 천지의 창조된 대략(세계)이 이러하니라(창2:4) 창조와 관련된 ‘세계’라는 말의 의미가 ‘아이오나스(히11:3)’ ‘톨레도트’(창2:4)는 우주(Universe)가 아닌 세대(Generation)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우주 창조에 궁극적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대(하나님의 혈통 가문) 창조에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하나님의 계보의 확장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다. 

홍수 이전의 계보 –창5:1-32에서 아담에서 시작하여 노아까지의 계보가 나온다. 아담이 셋을 낳고 셋이 에노스를 낳고 에노스는 게난을 낳고 게난은 마할랄렐을 낳고 마할랄렐은 야렛을 낳고 야렛은 에녹을 낳고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고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고 라멕은 노아를 낳는다. 인류의 첫 심판인 홍수 심판이 인류 역사의 종말이라 한다면 이 족보에 등장하는 가문이 구원받는 유일한 하나님의 혈통이 되는 것이다.

FAMILY LINE – 세대(Generation)의 다른 표현으로 Family Line이 있다. 가문과 혈통을 말하는 계보는 글자 그대로 Family Line이다. 선조가 앞에 가고 후손은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 앞과 뒤는 영원히 바뀌지 않고 바꿀 수도 없다. 구름기둥을 따라 광야를 행진하는 순서와 같다. 이 순서는 철저히 지켜져야 하고 그것이 사는 길이고 형통하는 길이다. 앞에 가는 선두 주자의 책임이 매우 크다. 따라오는 후손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FAMILY LINE – 성경에서의 계보 소개는 인류 역사의 핵심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실히 말해준다.믿음의 계보 중심의 역사를 말하지만 반대에 서 있는 불신앙의 계보도 소개하며 그 결말을 보여준다. 아담에서 시작된 계보는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믿음의 반열을 굳건히 지키는 후손이 있고 믿음의 반열에서 이탈하는 후손도 있다. 아담의 아들 세대에서 아벨과 가인이, 노아의 아들 세대에서 셈과 함이 갈라서며 믿음과 불신앙이 분리된다. 

FAMILY LINE – 믿음의 계보는 에녹의 동행이 증손자 노아의 동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선명히 보여준다. 에녹의 나이 65세에 태어난 므두셀라는 에녹의 동행 300년을 동행하고 그 기간 동안 187세에 라멕을 낳고 라멕은 므두셀라 생존 동안 777년을 동행하고 므두셀라 보다 5년 일찍 죽는다.  노아는 조부 나이 369세(라멕은 182세) 때 태어나 홍수 나는 600세까지 조부와 함께 하나님과 동행한다(창6:9) 에녹의 300년 동행에서 시작된 후손들의 동행이 마지막 홍수 심판 때까지 이어진 것이다. 

FAMILY TREE – 계보의 다른 표현으로 Family Tree가 있다. 씨와 열매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부모와 자녀는 씨와 열매 관계에 있다. 씨와 열매는 100% DNA의 동질성을 갖는다. 완벽한 종족 번식의 섭리이다. 신앙의 계보나 불신앙의 계보는 영적 DNA의 동질성을 갖는다. 영적 DNA는 성령은 성령의 DNA를 100% 전수하고 악영은 악영의 DNA를 100% 전수한다. 좋은 열매로 좋은 나무를 알고 나쁜 열매로 나쁜 나무를 알 수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마7:16-18)

FAMILY TREE –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며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다(시127:3) 자식은 부모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업의 역할과 열매의 역할을 한다. 그 기업과 그 열매가 악한 기업, 악한 열매가 될 수 있고 좋은 기업, 좋은 열매가 될 수 있다. 나무 역할의 부모가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를 열매인 자식이 증명하는 것이다. 같은 밭에 좋은 씨가 뿌려지고 가라지가 뿌려진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다. 

FAMILY TREE –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심고 거두는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잘못 심은 것을 아무리 변명하고 정당화하고 합리화 해보라. 콩이 팥이 될 수 없고 팥이 콩이 될 수 없다. 심는 내용은 각자의 성품, 습관, 말과 생각, 모든 행동 등이 총망라 된다. 그것은 반드시 거두게 되는 것이 심고 거두는 창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농사짓는 농부에게만 해당되는 법칙이 아니다. 유형 무형의 모든 것이 심는 것이 된다.

혼합 동행 – 믿음의 계보에 속한 사람과 불신앙의 계보에 속한 사람이 별도의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나 문제는 함께 같은 공간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많은 규모의 이방인이 애굽에서 나와 함께 따라다녔다. 그들이 틈만 나면 원망하고 불평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원수를 갚지 말라는(마5:43-48) 하나님의 의도를 아는가 악인에게 악인 처럼 반응하지 말라는 것이다. 악인처럼 반응하면 나 역시 악인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처럼 너희도 온전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