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여행은 세상에 출생하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속되는 기나긴 여정이다. 긴 여행이든 짧은 여행이든 필수적인 것은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길이 없으면 여행은 불가능하다. 길의 기원은 인간의 기원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길의 중요성은 점점 증대하여 도로 시스팀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냉전 시절 소련의 흐르시쵸프가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여러가지 부러운 것 중에 가장 부러운 것이 미국의 고속도로였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1956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연방 고속도로 법이 만들어지고 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된 이후 2006년 현재 46,876 miles(75,440km)에 이르는 세계 최대 도로망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1965년 국민소득 80달러에서 오늘날 35,000달러에 이르는 눈부신 경제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고속도로망이다. 특히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은 건설에 대한 결단도 기적이고 건설 공사비 조달도 기적이며 건설 기술 문제도 건설하는 과정도 기적이며 완성 자체가 기적이었다.
경부 고속도로의 기적은 지도자의 비전과 결단에서 비롯되었다. 독일등 서방 선진국을 답사한 후 국가 경제 발전의 핵심 인프라 중에 도로망의 중요성을 절감한 박대통령의 결단에서 시작되었다. 도로는 단순한 이동 편리 수단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의 비전이며 국가 발전의 대동맥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 효용 가치는 무궁무진 하다는 점이다.
1960년대 중반 한국의 사정은 고속도로 건설은 커녕 국민의 식량 문제부터 해결해야하는 세계 최빈국 형편에 있었다. 절대 부족한 식량은 미국의 농산물 원조에 전적으로 의존할 정도로 열악하여 춘궁기에는 끼니를 거르는 세대가 부지기수 였다. 더구나 국제 관계, 특히 미국과의 관계는 혁명에 의한 군사 정권의 등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박대통령이 서울과 부산, 한국의 종축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물론 미국의 영향권에 있는 세계은행도 고속도로 건설의 타당성을 부정하고 나섰다. 한국의 경제 수준에 비해 아직 시기상조이고 민생 부분 등 더 시급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국제 정치에서 오늘날 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미국, 더욱이 그토록 경제 국방 등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정부가 미국의 판단을 거슬러 재원확보 대책도 없이 밀고 나간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고 집요했다.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빈곤 해결의 근본적 대책이 중요한 것이다. 그 대책을 위한 산업발전 기반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무엇보다도 선결되어야 하는 과제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확고한 신념의 근거는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을 가능케한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기술발전과 아울러 잘 구축된 아우토반의 역할에 대한 확신이었다.
대통령이 직면한 도전은 여러 면에서 엄청난 것들이었다. 최우방국인 미국의 반대는 물론 정부의 관계부처와 학계와 전문가 집단에서도 반대했고 야당은 물론 집권세력 안에서도 반대가 거셌다. 극도로 궁핍한 나라살림에 막대한 소요재원 조달 방안도 없었다. 무리한 강행은 국가경제의 파탄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가장 큰 난제는 국내에 어느 누구도 고속도로를 건설해본 경험이 있는 회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예산도 설계도 기술도 장비도 막연하기 짝이 없었다. 이때 떠오른 것이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이었다. 정회장은 1965년 태국에서 짧은 구간이지만 고속도로 공사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 무모하게 뛰어들어 형편없이 적자 본 실패만 경험한 공사였다.
무모하기로 말하면 두 사람다 똑같았다. 사즉생의 각오로 모험에 뛰어든 결과 당초 제시한 280억 예산에 근접한 비용으로 결국 완성했다. 세계고속도로 건설 역사상 최저 비용, 최단 시간 완공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찬성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거의 불가능한 도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신념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으로서 매우 부끄러움을 느낀다. 신앙이 아닌 신념으로 기적을 만들어낸 역사적 사건을 보면서 신앙의 수준이 신념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인본 신앙의 현대 크리스챤들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진정 하나님을 믿는 신본적 신앙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신념으로 없는 길을 만든 사건을 보면서 적어도 신앙은 그 이상이어야 한다는 통렬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창조주를 믿는 것이다. 그분은 지금도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