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5)

에녹의 족보 –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보를 소개하는 내용의 공통점이 있다. “누가를 누구를 몇 살에 낳고 몇 년을 살고 죽었더라”는 자손이 누구냐와 나이 소개가 전부였다. 그러나 에녹에 대하여는 부연 설명이 있다.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다니 하나님이 데려 가시므로 더 이상 세상에 없었다. 최초의 휴거(승천) 주인공으로 소개한다. 휴거 3대 인물이 에녹, 엘리야, 예수님이시다. 최초의 승천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인생 길1(각자의 길) – 인생 길은 혈육 관계일지라도 대신 갈 수 없는 길이다. 도와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대신 살아줄 수 있다해도 남이 살아주는 인생은 남의 인생이지 나의 인생은 아니다. 따라서 인생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도 본인 책임이다. 누가 원인 제공을 했든지 결과적으로 해결은 본인 책임이다. 선악과 사건을 보라. 마귀의 속임수로 인한 범죄이지만 책임은 아담에게 물으셨다.

인생 길2(일방 통행) – 인생 길의 특징은 일방통행이라는 것이다. 왕복 통행이 아니다. U턴이 불가능하다. 일방통행 길은 실수라 할지라도 돌아설 수 없이 끝까지 가야 한다. 매사에 출발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길 선택이 길을 아는 사람의 판단일 때 그 길은 후회하지 않는 길이 된다. 길 되신 예수만이 100% 확실한 생명의 길이 된다. 

인생 길3(가보지 않은 길) – 인생 길의 특징은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것이다. 처음 태어나서 처음 살다가 처음 죽는 것이 인생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생이 처음 사는 운명을 사는 것이다. 처음 사는 인생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에 모르는 길을 가는 것이다. 길을 아는 분은 예수님이 유일하다. 

장애물의 필연성 – 인생 길에는 장애물이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모르는 길을 가는 자체가 장애물인 셈이다. 장애물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전제에서 해석해야 한다. 장애물의 해석이 중요한 이유는 미래의 방향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장애물의 허락은 은혜이다. 방향을 정확히 알 수 있고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장애물의 필연성 – 장애물에 의해서 방향의 맞고 틀림을 알게 된다. 틀린 경우를 확인했다면 즉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틀린 방향은 아무리 합리화 하고 정당화 해도 방향은 달라지지 않는다. 장애물을 만났음에도 방향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자기의 때문이다. 온갖 이론을 총동원하여 설명한다해도 맞는 방향이 아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멸망한다. 

세가지 방향1(정 방향) – 정 방향은 언제나 단 하나뿐이다. N방향은 N뿐이다. 다른 N는 없다. S방향은 S뿐이다. 다른 S는 없다. 구원의 방향은 십자가 방향뿐이다. 예수님 만이 길이요 구원의 방향이다. 종말일수록 많은 이단이 등장하여 현혹하지만 오직 예수뿐 인것은 변함이 없다.

세가지 방향2(유사 방향) – 사이비 이단의 목적이 유사 복음, 유사 구원, 유사 예수를 만들어 필사적으로 활약하는 이유가 불확실한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영적 분별력이 없으면 십중팔구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쉽다. NE, NW는 아무리 열심히 가고 멀리 가도 N를 만나지 못한다.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 보다 방향이 맞느냐가 우선이다. 

세가지 방향3(후진 방향) – 분명히 구원과 멀어지고 예수님과 멀어지면서 여전히 천국을 향해 가고 있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뒷걸음 치고 있는 사람이다. 눈은 정면을 보고 있기 때문에 방향은 의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걸음, 한걸음 뒤로 물러가는 동안 계속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지는 것이다. 

에녹의 동행 —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던 중 하나님이 그대로 하늘나라로 데려가시므로 더 이상 지상에서는 볼 수 없었다.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된 최초의 인물이 에녹이다. 육신의 유한 시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그대로 무한 시간의 동행으로 연결된 것이다. 육신의 유한 시간의 중요성은 무한 시간의 향방이 결정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에녹의 동행 – 하나님과의 동행은 구원의 동행이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영생의 동행이다. 하나님의 말씀과의 동행은 축복의 동행이며 기도와의 동행은 응답의 동행이다. 예배의 동행은 은혜의 동행이다. 영생의 동행은 천국의 동행이다. 천국의 동행은 행복의 동행이다. 동행은 일분 일초도 빠짐없는 동행을 말하며 한 몸된 동행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