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가 선정하는 세계 400대 부호에 포함된 한국인 5명이 모두 재벌 2,3세라는 건 충격적이다. 자본주의가 성숙한 일본조차 명단에 든 5명 모두 자기 손으로 기업을 일군 창업자였다. 미국도 125명 중 89명이 자수성가 했다.
재벌 자녀 세대의 경우’제2의 창업’론을 말한다. 물려받은 대로 있었다간 망했거나 군소 업체로 전락했겠지만 새 분야를 개척해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다는 것이다. 일리가 없지는 않다. 삼성이 반도체, 휴대폰 사업을 벌여 글로벌 1위가 된 건 인정할 만하다. 게다가 그 사업을 재벌가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면 한국적 창업 생태계에서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엄청난 투자도투자려니와 개발이 좀 늦어지거나 대출 만기를 지키지 못하기라도 했다면 채권단과 투자자들의 투자 회수 압박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와 달리, 미국에서 창업자가 많고 구글, 페이스북, 우버 같은 대박 벤처가 계속 나오는 것은 살아있는 창업 생태계 때문이다. 우리는 잘 안 되는데 미국에선 창업자가 많고 구글, 페이스북, 우버 같은 ‘대박’ 벤처가 계속 나오는 이유 중 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창업 생태계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벤처 캐피털에 자금과 신용을 지원하고, 벤처 캐피털은 수많은 스타트업(초기 벤처)을 속속들이 살피며 대화하고 돕고 투자한다.
돈만 대주는 게 아니라 경영 시스템과 지혜까지 빌려주고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을 공유한다. 대출 만기가 다가오는데 성과가 늦어져 자금 회수가 어려운 기업에는 위로 전화도 걸어준다. 실패했을 때 가족과 친구들에게서조차 멀어질 만큼 파산하는 우리와 달리 미국 벤처사업가는 패자 부활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실패라는결과보다 과정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런 안정된 기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곳은 재벌가(家) 외엔 거의 없다. 재벌가 2,3세들은 능력을 검증받을 필요 없이 안정된 기반 위에서 사업할 수 있다. 게다가 계열사 물류를독점하는 회사, 그룹 전체 광고를 담당하는 회사, 그룹 직원 수만 명의 식사를 제공하는 급식업체 같은, ‘땅 짚고 헤엄치기’ 식 회사를 헐값에 물려받는 ‘반칙’까지 한다. 이러니 그나마 있던재벌 2,3세의 ‘제2 창업’ 의지조차 사라져가고 있다.
‘금수저’를 역전시킬 수 없는 자본주의는 봉건주의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젊은이들은 창의적이고 큰 꿈을 꾸는 모험보다는 안전한 길만 찾아 나선다. 공대 수석 졸업자가 의학전문대학원입학 준비를 하고, 로스쿨 입시가 고시처럼 치열해지는 우리는 ‘죽은 자본주의’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창업 정신의 부재는 모험을 두려워하는 편안한 성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편안한 성공은 만드는 성공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성공이다. 땀과 눈물을 모르는 성공은 횡재일 뿐이다.
한국 젊은이들이 횡재 성공을 추구하는데 반해 창업 지원 금융 시스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실리콘밸리의 젊은 창업자들은 월스트리트 대형 투자은행들의 투자 제의를 거절할 만큼 당당하다. 그들은 ‘열정과 패기’를 그리 일찍 저당잡히고 싶지 않다며 더 큰 도전에 나선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열정과 패기가 없다고 혀를 차기 전에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훈련부터 받게 해야 한다. 고생을 많이 해야만 하는 배고픈 시절을 살았던 부모 세대가 자식에게는 차마 고생을 시키지 못하는 약한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애굽에서 430년이나 노예 생활로 지긋지긋하게 고생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광야 생활을 통하여 또 다시 연단하고 훈련한 이유가 무엇인가 고생을 모르는 사람에게만 연단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연단과 훈련이 없는 성공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성공해도 그 성공은 재앙이다. 축복 역시 마찬가지다. 연단을 모르는 축복은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함정이 되기 때문이다. 강한 연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앙이 확고해지고 불가능을 겁내지 않는 영적 무장을 갖추게 된다.
경제적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 보다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정신 문화와 가치관과 시스팀의 차이가 중요하다. 끝없는 도전 정신을 추구하는 미국의 정신 문화는 청교도 신앙에서 출발한다. GNP와 상관없는 도전 정신은 하루 아침에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과감하게 도전 했던 역사의 시작이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안일 무사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도전하는 청년들이 나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광야의 과정은 기적의 만나를 먹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가나안 정복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주님이 재림하셔서 이 땅의 역사가 종료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영적 전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