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3)
은혜와 믿음 –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단어 하나로 표현한다면 ‘은혜’일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인간은 존재가 불가능하다. 인생의 시작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존재가 가능하다. 반면에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 단하나 믿음이다. 믿음은 인간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방법이고 은혜는 값없이 구원과 함께 모든 것을 베푸시는 방법이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믿음과 은혜의 관계이다.
믿음의 정의와 요약 – 히11:1-3은 히11장 전체의 프롤로그로써 믿음의 정의와 요약을 말하고 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인생을 모르고 사는 모순된 삶이 의외로 많다. 인생을 알려고 하면 삶의 주체인 나를 알아야 하고 삶의 현장인 세상을 알아야 한다. 두 가지를 알려고 하면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비로서 인생을 알게 된다.
믿음 있는 지식, 믿음 없는 지식 – 믿음 있는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며 믿음 없는 지식은 사람의 지식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말한다. 인생에서 상황 파악은 매우 중요하다. 시각과 청각, 감각이 육적 감각보다 영적 감각일 때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것을 사람들이 보면서도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사람이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시49:20)
믿음에 의한 정체성 확인 – 인생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 정의(定義)를 알고 세계에 대한 정의(定義)를 아는 것이다. 정체성의 확인은 존재 확인이다. 어떤 존재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 인생을 옳게 사는 방법이다. 믿음에 의한 정확한 정체성 확인이 중요하다. 창조주에 의한 정체성 규정이 올바른 규정이다. 피조물 스스로에 의한 정체성 규정은 부정확하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며 아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다.
창조주의 정의, 피조물의 정의 – 인생의 모든 정의를 규정할 때 사람의 규정하는 정체성의 정의와 하나님이 규정하는 정체성과 정의가 있다. 종말 시대의 타락은 정체성의 혼란에서 비롯된다. 가족 관계의 정체성, 공동체의 정체성, 교회의 정체성 존재의 바른 정체성이 개개인의 삶 뿐 만 아니라 국가적 정체성에도 필연적 영향을 준다. 하나님과 인간관계이서도 정체성이 바르게 정립되고 구별 되어야 한다.
믿음의 가시화 – 보이지 않는 존재이신 하나님이 보이는 존재로 오신 사건이 독생자 탄생이다. 예수님의 오심이 하나님의 가시화일 뿐 아니라 인간을 향한 믿음의 요구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가시적인 수단과 방법을 요구하시고 응답 역시 가시적인 응답을 하신다. 성경은 말씀과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씀은 반드시 사건화 되어 가시적으로 보여 주신다. 믿음은 실제적이며 현실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며 동행하는 것이다.
믿음의 범위 – 믿음의 범위는 현세에서 내세까지이다. 본문의 모든 세계는 ‘코스모스’(가시적 공간적 세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아이오네스’(공간적 의미와 시간적 의미를 포함하고 시간의 범위를 영원전부터 영원후 까지 포함)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하나님의 내주하심은 하나님의 범위의 내주하심이다. 현재적 내주는 이미 내세적 내주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내주는 하나님의 범위가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믿음의 범위 – 하나님의 임재는 장소와 시간의 졔약이 없다. 믿는 자는 언제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는 변함이 없고 차별이 없다. 우주의 저 끝에서 저 끝까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은 그 곳에 계신다.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든지 어떠한 상황에 놓였든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변함이 없다.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영역인것이다. 상황의 종류가 환경의 종류가 하나님의 행하심에 제약을 줄 수 없다.
하나님의 인격적 만남 – 문제는 하나님의 행하심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 나의 인격적 만남의 여부에 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면 나는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과 나는 관계가 없는 삶이 되는 것이다. 고후13:5 ‘우리 자신이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해야 한다. 빌2:13 내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의 내적 역사, 외적 역사 – 하나님의 역사는 내적 역사가 선행되어야 외적 역사가 이어진다. 내적 역사가 선행되지 않으면 외적 역사는 실질적 관계가 없다. 광야에서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고도 불신앙에서 탈피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내적 체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적 체험의 사람인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