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1-3)

믿음의 필수성 – 히11장은 믿음 장이라 불린다. 믿음의 조상들의 명단이 나온다. 믿음이 필수인 이유는 구원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방법은 예수 믿는 것 외에는 없다. 구원의 필수인 믿음을 점검하여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구원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처럼 믿음은 필수다. 이 믿음에 대하여 오해하거나 착각하는 것만큼 치명적인 일이 없다. 믿음에 대하여 확실히 점검하고 확증할 필요가 있다.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후13:5)

믿음의 오해(시각 기준) – 믿음의 범위가 시각 안에 존재하는, 보이는 범위 내에서 믿는가 시각을 벗어나 보이지 않는 범위까지인가 근본적으로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은 보이는 대상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분이다. 영적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육적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우상이다. 믿음의 대상은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존재가 아니다. 

믿음의 오해(판단 기준) – 인간적 판단 기준에 의하여 합당한 범위 안에서 믿고 인간적 판단에 적합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믿음이 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명령이 다 이해되고 합당하게 인정되어 믿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인간은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어질 때 비로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황당해도 믿어지는 것이다. 

믿음의 오해(가능성 기준) – 인간적 기준으로 볼 때의 가능성 범위 안에서 믿는 믿음이 있다. 인간적 가능성을 벗어난 영역은 믿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종교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신앙 생활이다. 종교 생활은 인간적 노력과 수행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적 기준의 신앙 – 보이는 시각 안에서 믿고 인간적 가능성 안에서 믿고 인간적 판단 안에서 믿는 것은 엄밀히 말해 믿음이 아니다. 기존의 가능성, 기존의 보이는 것, 인간의 지식적 이해 안에서 믿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다.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며 동의하는 것이다. 지식적 동의(인정)와 믿음은 전혀 다른 의미와 정의를 갖는다. 목격하고 있는 사실과 현상은 믿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과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믿음에 대한 질문 – 나를 믿는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나에게 순종하는 것인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인가 나의 가능성을 믿는 것인가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는 것인가 나의 판단을 믿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인가. 마귀에게 속지 말고 자신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상황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림이 있는가 없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내 생각이 맞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가

믿음이 필요한 상황 – 믿음이 필요한 상황은 가능한 상황보다 불가능한 상황이다. 해결 능력이 있을 때보다 해결 능력이 없을 때이며 문제가 없을 때보다 문제가 있을 때, 길이 있을 때보다 길이 없을 때, 보이는 상황보다 보이지 않는 상화이다. 인생 문제의 해결 자, 구원자는 예수님 한 분 뿐이며 그분을 믿는 길뿐이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있어 믿음은 절대 조건이며 유일무이한 조건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믿음의 정체 – 고전2:5에서 보면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함이라” 신앙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많은 신앙 지식이 쌓이게 된다. 그런 경우에 대부분 믿음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외로 그런 사람 가운데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다. 지식과 믿음을 혼동하는 것이다.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심을 말한다. 예수가 내 안에 주인으로 계시는 것이다. 

믿음의 범위는 하나님의 범위이다 – 믿음이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이라면 믿음의 범위가 하나님의 범위가 된다. 하나님의 범위는 보이는 범위에서 보이지 않는 범위까지, 가능한 범위에서 불가능한 범위까지, 지금부터 영원까지, 이해가 되는 범위부터 이해가 안되는 범위까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면 제한 없는 하나님의 범위가 나의 범위가 되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위치 – 정작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를 지배 하시는가 내가 주님을 지배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이 된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에 따라 목적과 수단의 역할이 달라진다. 내가 주님을 사용하려 하는가 주님이 나를 사용 하시는가. 나의 능력으로 사는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가. 내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가 될 때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삶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