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룹의 엘리트 의학자들과 의사들이 2004년 11월 뉴욕 록펠러 대학에서 비공개 회합을 가졌다. 세계적인 의학전문가들이 의료체계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함께 모였었다. 그 회합의 결과는 고무적인 동시에 절망적이기도 했다. 고무적인 것은 대부분의 건강 문제가 통제 불가능한 요인 때문에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절망적인 면도 같은 이유였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문제를 그들이 해결해 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고 한다. 의학적 연구에 따르면 건강 문제의 80%는 다음 다섯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과식, 음주, 흡연, 스트레스, 그리고 운동 부족이다. 이보다 더 쉬울 수는 없다. 그런데 이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사소한 몇 가지의 생활 습관을 바꾸기만 하면 우리의 주요한 건강 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가 바뀌기를 원한다. ‘원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것을 얻기 위해 아무리 힘이 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계속해서 그것을 갈망하고, 또 그에 걸맞게 자신을 통제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이든 또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이든, 그것을 원한다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떤 희생이나 고통이라도 감수해야 할 만큼 원한다는 의미이다. 

존스합킨스 대학교 의과대학의 13대 학장 에드워드밀러 박사에 의하면, 열 명 중의 아홉 명이 여기에 실패한다고 한다. 매년 15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관상동맥우회로 이식 수술을 받는다. 이 수술은 영구적인 치료가 아니라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식사와 운동 습관을 바꾸지 않고는 수술의 효과가 지속되지 못한다. 그리고 환자들은 의사에게 그런 말을 직접 듣는다. 그런데도 환자들의 대부분은 의사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밀러 박사가 수술 받은 환자들을 2년 후에 만나보았더니 90%가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들 모두가 오래 살고 싶어 하지만, 충분히 오래 살기를 원하고 있지는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조사결과가 맞는다면, 열 명 중의 아홉 명은 생활 습관을 바꾸기 보다는 차라리 죽겠다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계셨다. 복음서에는 183개 정도의 질문이 기록되어 있다. 

다양한 범주의 질문들이지만 가장 가슴을 울리는 것들은 핵심을 찌르는 질문들이다. 38년 된 병자에게 한 질문이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좀 불친절한 질문 같아 보인다. 상처 위에 모욕을 가하는 것 같다. 낫기를 원하지 않는 병자가 어디 있는가? 그분은 더 잘 아신다. 우리는 스스로 돕지 않는 사람을 도울 수 없다. 아무리 그것이 절실하게 그 사람에게 필요할지라도 말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모욕했던 강도가 그런 경우이다. 그는 구원으로부터 겨우 6피트 떨어져 있었다. 

38년 된 병자의 경우 일인용 매트를 벗어나지 않는 삶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의 세계는 매트 넓이에 국한 되어 있었다. 그 곳을 벗어나고자 하는 모험이 필요하다. 매트를 벗어나는 불편함 고통을 각오하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거기에 안주하고 있는 병자에게 예수님이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질문은 어쩌면 이 질문은 병자에게 모욕 이었을 수도 있고 책망 일수도 있다. 축복에는 책임이 따른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각오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예수님이 그 병자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하셨을 때, 그것은 38년 동안 해보지 않은 일을 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기적을 원한다면 해야만 할 일이 있다. 우리는 해보지 않았던 일에 대해 낯설고 불편하고 두렵게 생각한다. 

변화를 원한다면 더하든 빼든 방식을 바꿔야만 한다. 변화는 단 한번으로 되지 않는다. 낫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옛날 방식으로 계속하면 된다. 그러나 낫기를 원한다면 바꿔야 한다. 생각을 바꾸고 방법을 바꿔야 한다.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두려워도 도전해야 한다. 원한다는 것은 대가를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을 때 그리고 행동으로 나타날 때 원한다는 소원이 진실로 입증되는 것이다. 

말로만이 아닌 전인적인 증명이 필요하다. 한 발 한 발 내딛기를 계속한다면 드디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이르게 될 것이다. 기적은 같은 방향을 향한 기나긴 순종의 부산물이다. 그저 자신의 매트에 안주해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넘어질지언정 일어나 걸으라. 앉아서 낫기를 바라면 그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그러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걷기를 계속한다면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