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6:13-16)
방주의 설계 – 방주의 설계 제작자는 피조물인 노아의 제작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의 제작이다. 방주의 설계는 구원의 설계이며 교회의 설계이며 인생의 설계이다. 성경(말씀) 인류 구원의 매뉴얼이다. 이 매뉴얼을 지키느냐 안지키느냐가 생사화복을 결정한다. 타이타닉의 침몰의 원인이 밝혀졌는데 건조 과정에서 설계도를 무시하고 무단 변경했고 선박 운행 과정에서 매뉴얼을 무시 했으며 심지어 항해 중에 반대 방향의 선박으로부터 빙산 경고를 받고도 무시했다.
지켜야 할 기준(출처와 유일성) – 방주 설계도에는 여러가지 기준의 지시가 있다. 재료에 대하여, 규격에 대하여, 구조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기준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있다. 하나님이 주신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의 속성을 말한다. 상황에 의한 변경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황과 조건에 관계없이 성취되고 역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대한 태도와 자세는 비타협적이며 절대적이빗만 며 불변적이어야 한다.
지켜야 할 기준(약속과 보장) –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 약속의 속성은 말씀의 속성과 일치한다. 말씀이 천지가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는 말씀의 속성이 약속의 속성이다. 약속에는 책임이 구분되어있다. 사람의 책임과 하나님의 책임이 구분되어 있다. 순종은 사람의 책임이고 축복은 하나님의 책임이다. 믿음은 사람의 책임이고 구원은 하나님의 책임이다. 기도는 사람의 책임이고 응답은 하나님의 책임이다.
지켜야 할 기준(구별) – 하나님의 기준은 생사의 기준이다. 선악과 사건을 비롯한 모든 사건들이 생사의 기준을 입증한다. 하나님의 기준은 축복과 저주의 기준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들어와도 저주받고 나가도 저주 받는다. 예배는 구원의 여부를 증명한다. 구원받은 사람은 산 제사가 의무적이다. 물질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인인지 아닌지 증명이 된다.
채워야 할 기준(규격) – 방주의 SIZE가 나온다. 300규빗, 50규빗, 30규빗. 단 1규빗만 부족해도 배는 침몰한다. 1규빗이 고생한 299규빗, 49규빗, 29규빗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대부분 완성, 거의 완성이 미완성이지 완성이 아니다. 지시된 기준(규빗)과 일치된 것만이 완성이다. 1규빗의 부족이 전체의 침몰을 만든다. 선악과 하나가 아담 한 사람만아 아니라 인류 전체가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채워야 할 기준(횟수) – 여리고성 정복을 위한 하나님의 지시는 6일간 매일 한번씩 돌고 7일 째는 7번 돌고 나서 크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7일 동안 매일 돌아야 하는데 하루만 빠져도 성은 무너지지 않고 마지막 날 7번 중에 한번이 부족해도 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7번 충족해야만 무너지는 것이다. 한번의 부족이 7일 동안의 수고를 헛되게 하는 것이다. 단 한 번이 정복을 가능하게도 하고 불가능하게도 한다. 7일째 6번을 순종했으나 마지막 한번의 불순종이 정복을 불가능하게 한다.
채워야 할 기준(양,量) – 가나 혼인 잔치 포도주 사건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의 지시는 6개의 돌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는것이었다. 어떠한 사정과 형편이 있어도 6개의 항아리에 가득 채워야만 물이 포도주로 변화하는 것이다. 모든 항아리는 채워졌으나 마지막 항아리 한 개가 채워지지 않아도 결코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 천명의 양식을 해결하기 위해 오병이어를 요구하셨을 때 인색한 마음에서 한 두개를 빼놓고 나머지를 드렸다면 과연 기적이 일어났을까
채워야 할 기준(지속성) – 포도나무 비유는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를 말한다. 포도나무와 가지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번의 단절도 허용이 안 된다. 단 한번의 분리로 생명은 끊긴다. 아주 짧은 순간 조차 허용이 안되는 것이다. 생명은 출생 순간부터 사망 순간까지 한번의 단절도 허용이 안된다. 심장의 작동과 같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교회 스케줄과 같은 특정 시간에 국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한사람, 한번 – 아담 한 사람이 선악과를 한번 범한 이유로 온 인류가 죄인이 되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죄는 한 번과 두 번, 여러 번이 차이가 전혀 없다. 단 한번이 사망을 결정하고 멸망의 원인이 된다. 구원 역시 그렇다. 단 한번의 십자가 사건이 인류의 죄를 해결한 것이다. 에스겔 22장 30절에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볼 수 있다.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자를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 그 성을 멸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한 사람, 마지막 한번이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