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1:6-10)

종말 징조의 경고(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 (고후11:4)종말적 현상 중에 복음의 변질이 있다. 복음의 변질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당연히 구원받은 줄 알았으나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 당하는 함정이 된다. 마귀는 사람들을 교회 안에 있게 하고 교회 다니는 것이 구원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지옥으로 보내는 것이다. Right Gospel이 아닌 Wrong Gospel을 믿게 하여 그야말로 완벽하게 지옥 가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복음 –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이단 사상을 경계하여 보낸 편지가 갈라디아서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에 더하여 율법의 행위가 있어야 구원이 완전하게 된다는 유대교적인 사상이 갈라디아 교회에 번지고 있었다. 성경에 인위적으로 다른 것을 첨가하거나 임의로 삭제하는 것은 심각한 이단적 행위이다. 사단은 초대 교회 시대부터 끊임없이 복음에 이단 사상을 혼합하는 시도를 해왔다. 이단의 존재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다른 복음은 변질된 복음 –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사단의 시도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영지주의를 비롯하여 각종 이단 사상이 출몰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애굽에서 구원한 신이라고 부르게 했던 사건처럼 각종 이론과 비성경적 논리를 앞세워 복음의 변질을 시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상 숭배적 타협 신앙을 용납하는 자체가 금송아지 숭배를 용납하는 것과 같다. 

귀족 복음의 차별 신앙 – 남미 정복은 군사적 정치적 정복이지만 종교적 정복이 병행 되었다. 천주교가 스페인 군대와 함께 들어간 후 종교적 정책은 철저히 정복자와 피정복자를 구분했고 차별했다. 피정복자인 원주민을 영혼 없는 짐승으로 정의하여 노예화 정책을 합법화했다. 카톨릭은 정복자 편에 서서 그들의 피정복자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 시켰다. 복음이 정복자와 피정복자를 차별하는 복음으로 변질된 것이다. 

귀족 복음의 차별 신앙 – 한국 교계에도 이러한 현상이 있다. 보수 교단 중에 적자(적통) 의식, 정통 족보 계승의 우월의식 귀족 의식이 있다. 소위 신사 참배 사건을 기준으로 신앙의 지조를 지킨 순교적 전통의 교단과 변절한 신앙의 계열에 속한 무리로 매도 당하는 교단이 있다. 선조의 일탈이 후손에게 벗어지지 않는 굴레가 된 것이다. 

외식 복음의 형식 신앙 – 예수님의 책망을 받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무리들은 글자 그대로 외식과 위선의 대명사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특권의식과 엘리트 의식으로 충만했었다. 회칠한 무덤이었다. 오늘날도 정통 보수 교단을 자처하는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자신들의 교리와 신학적 해석이 성경 이상의 권위를 가진 것으로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적 모습에 권위와 명예를 거는 집착을 볼 수 있다. 

내가 복음의 타협 신앙 – 나의 복음 너의 복음이 있다. 말씀을 받을 때 자신의 기준에 의하여 선택적으로 상황적으로 주관적 입장에서 말씀을 선별하는 것이다. 본인의 기준과 취향에 맞추어 받고 안받고 하는 것이다. 선포는 복음적 이었으나 받을 때 비복음적으로 받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아는 설교자가 미리 감안하여 청중의 취향을 고려한 설교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청중이 거부할 수 있는 내용을 삭제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직통 복음의 독주 신앙 – 소위 직통 계시파 신앙이 있다. 기도를 많이 하고 신령 하다는 사람 가운데 직통 계시 위주의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 영적 지도자의 권면이나 지도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영적 교만 때문에 위계 질서에 순복 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철저히 자기 방식 위주이다. 교회 방침이나 영적 지도자의 지시와 인도에 순종하지 않는다. 신앙 생활 전반을 독자적 결정에 따라 한다. 

신앙의 점검 – 영적 정체성 점검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에서 정체성이 확인된다. 하나님께 속한 자와 아닌 자, 진리의 영에 속한 자와 미혹의 영에 속한 자의 분별은 말씀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로 알 수 있다. 성령에 속한 자와 마귀에 속한 자의 다른 점은 영적 위계질서에 대한 자세이다. 성령의 역사는 철저히 위임 권위에 순종하게 한다. 반면에 악한 영의 역사는 위임 권위에 절대로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반응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