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장 3-5절에 음행한 여자가 등장한다. 주님은 감람산으로 가셨다가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셨다.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칠 때였다. 그때 갑자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운다. 그 여자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실지, 주님을 시험하려는 의도였다. 

사랑과 용서가 옳은가? 사랑과 용서의 가르침이 합당 한가를 시험하려 한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4-5절)”.

신명기 22장 22-24절에는 간음한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을 모두 돌로 쳐서 죽이도록 규정돼 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들키면 바로 돌로 쳐 죽이도록 했다. 돌로 치는 형벌은 가혹하고, 유일한 간음의 형벌이기도 하다. 간음죄를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다. 주님의 대답이 중요한 순간이다.

주님도 율법에 규정한 처벌을 알고 계시고 그 규례를 무효화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규례에 의거하여 “이 여자를 돌로 치라!”고 당연히 하실 수 있다. 당연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주님이 그동안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하신 교훈이 무산되기 때문이다. 이미 말씀하신 교훈들 때문에 답변이 올무가 되기 쉬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간음한 여자를 “율법대로 돌로 치라!”고 하신다면,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용서를 말씀하신 예수님의 이중성을 공격할 것이다. 돌로 치라고 할 수도, 용서하라고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 답변을 노렸다. 그렇게 답변을 하시면, 주님의 가르침이 엉터리라고 문제를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님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유대 민족을 구원하는 구세주로 등극시키려는 희망이 있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율법의 덫에 걸리느냐 아니면 사랑과 용서의 가르침이 무산되느냐 하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로마법을 어길 수도 없다. 또한 로마법을 어기게 되는 덫이 놓여져 있다. 주님이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명령하신다면, 국가법을 위배하게 된다. 유대인은 사형집행을 명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로마의 법에 귀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율법에 따라 그대로 하라!”고 명령하시면, 로마 지배를 받는 유대 민족의 정황에서 로마에 반기를 드는 것이 되며 모든 처형의 권한을 로마 정부로 귀속시키고 있는 로마법을 어기는 행위가 된다.

물론 당시 로마의 부도덕과 문란함 온 세상 사람들이 알 정도였다. 이 상황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그렇다 해도 일반적인 형태의 죄를 금지하는 가혹한 법을 선포할 수 없는 것이다. 로마법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중의 지지를 약화시키는 일이 된다.

더욱이 주님이 사형선고를 내린다면, 삶과 죽음의 권세를 스스로 유보한 로마 정부와 충돌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주님이 로마 제국의 위엄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신다면, 반역죄로 기소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대인들이 노리는 것은 율법을 어기게 만드는 것이다. 율법에는 모세가 간음한 자를 돌로 치라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이 옳다면, 돌로 쳐 죽임을 당할 대상이다. 율법에는 “간음하는 사람을 돌로 쳐 죽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때 주님이 간음한 여자를 “용서해 주라”고 하시면,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 된다. 그렇게 하는 순간 주님은 유대인들로부터 정죄를 당할 대상이 된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신의 생명과도 같이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사단은 믿는 자들을 넘어지게 하기 위해 호시탐탐 덫을 놓고 기다린다. 진퇴양난의 함정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하시니라. 마귀는 인간을 속여 죄를 짓게 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함정을 팠던 사단이 다시금 예수님을 진퇴양난에 빠뜨리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의 죄와 사망의 해결 대책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몰랐다. 인간의 죄값을 치루고 사망을 해결하고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유일한 길이 되시는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비롯하여 모든 죄인의 살 길이 되시는 것이다. 로마법도 율법도 죽이는 법이지만 예수의 복음은 살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