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6:13-19)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을 방문하십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은 특수한 도시였습니다. 도시 이름만 보아도 알수 있듯이 그 곳은 로마 황제를 의미하는 “가이사랴”의 이름을 가진 로마제국과 황제의 권력을 보여주는 웅장함과 당시의 영적 타락을 상징하는 우상 신전 여러곳이 자리 잡은 도시였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질문을 제자들에게 던지신 것입니다. 그에 대한 반응은 여러가지였습니다. 여론에 의하면 예수님을 세례요한,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회개와 천국 메세지, 아니면 여러 능력 행하심과 때로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민망히 여기사 눈물 흘리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 한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주님의 관심은 다른 사람들의 여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누구로 아느냐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명답으로 고백합니다. 이에 주님은 이와 같은 신앙고백위에 교회를 세우실것이라 약속하시고 그 교회는 바로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이땅에서 매고 풀면 하늘에서도 매고 풀리는 권세를 가진 교회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 교회를 주님께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십니다. – 주님께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여 주신 교회가 지금도 온 땅 가운데 세워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부터, 사도바울도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섬겼습니다. 에베소, 고린도, 데살로니가, 골로새 등에서 교회들을 세웠고 그 흐름은 소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넘어 갑니다. 결국 그 흐름의 연장선은 세계 선교로 이어지고 조선땅까지 연결이 됩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중국에 정착했던 웨일즈 선교사 토마스의 순교적인 헌신을 통해 복음과 성경은 조선땅의 박춘권이란 사람에게 전해져 그의 집은 조선 초대의 교회 ‘널다리’ 교회로 이름 지어지고 그 교회가 우리가 잘아는 평양 대부흥의 원산지인 ‘장대현 교회’의 전신이 됩니다. 우리도 미국땅 가운데 한인 이민자로 살지만 이렇게 모여 예배 드리고 또 선교를 통하여 에콰도르 땅에도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시는 주님의 약속의 결과인줄 믿습니다. 

교회는 무엇인가? – 오랜 세월 교회를 다녀왔지만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교회란 무엇인가 한번 더 짚고 가면 좋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를 친목 단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때가 있는것 같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인간적인 교제를 누리는 곳이 교회라고 생각하시는가요? 물론 교회의 중요한 역할들 중 하나가 교제인 것은 확실하지만, 교회는 단순한 친목단체나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아닙니다. 또한 어떤이들은 교회가 구제단체 또는 구호를 위한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사명중에 하나가 세상의 불우하고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구제하고, 긍휼을 베푸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중요한 사명들 중 하나이지, 교회의 본질이 구제단체인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구제단체 이상의 것입니다.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원자로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함께 믿음안에서 은혜와 사명으로 모여진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공동체로 이뤄 가는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렇게 성경 신,구약 전체를 읽어보면 교회에 대한 여러 상징들, 의미들, 비유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신부입니다. – 엡 1:22-23을 보면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고 말하며 예수님의 몸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교회가 주님께 소중하였으면 성경은 교회를 성삼위일체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후서 11장 2절 에서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증거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남편이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것이며 하나님의 명령인것처럼 예수님도 교회를 그렇게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요 아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여기서”신부”라는 말은 육체적, 지상적 의미의 ‘신부’가 아니라, 영적 의미의 ‘신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영적 신랑인것입니다. 이 말은 교회를 구성하는 개개인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요 아내라는 뜻이며, 또 교회가 예수님의 몸인것처럼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속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된다는 것을 고린도전서12:12에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원자로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바로 이자리에 모인 성도와 제가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가 교회인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믿음안에서 은혜와 사명으로 모여진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공동체로 이뤄 가는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요?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을 주님이 하셨지만 결국 그 말씀이 열매를 맺은것은 사도행전의 초대교회 였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교회, 바로 그 교회는 핍박과 환란도 이기는 교회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권능으로 핍박을 이기고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행 4:29에 보면 세상이 주는 위협함 앞에서 오히려 더욱 담대히 말씀을 전하기 위해 기도하였을때 모인 곳이 진동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담대히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럴때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에도 교회들이 등장합니다. 그 교회들을 둘로 나눈다면 하나님께 책망받은 교회와 하나님께 칭찬만 받은 교회로 나누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을 제일 잘 보여주는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라고 합니다. 어떤 신앙이였길래, 계 3:15절에 바로 미지근한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신의 안정과 편리만을 추구하는 모습. 믿음의 능력은 없고 모습만 남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오늘날의 신앙의 형태일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그중 하나가 빌라델비아 교회 입니다. 어떤 교회입니까? 계 3:8 처럼 “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한 교회 입니다. 사도행전 교회처럼 세상의 위협함 앞에도,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고 고백하며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과 주신 사명을 배반치 않고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능력이 적어도 때로 고난이 찾아와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명 감당할때 우리 각자가 지체로써 주님의 몸을 이루는 교회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 새소망 교회가 그런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