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렇지는 않지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님께서 신속하게 또는 충분히 도와 주시지 않는 것 같다고 회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비협조적이거나 소극적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는 방식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할 일이 있다. 우리의 각종 사역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는 일에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가이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할 수록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를 수 있다. 열심히 하는 것이 열심히 가로막는 것이며 열심히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는다고 은근히 불평하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아무리 영적 경험을 통해 확인된 체험이라 해도 그 체험을 내세워 하나님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또 아무리 건전하고 성경적으로 이상이 없는 것 같이 판단이 되어도 그것으로 하나님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진리에 대한 투철한 신념에 근거했다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할 수는 없는것이다. 또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리 절실하고 적합해 보이는 계획일지라도 무작정 시도해서는 안 된다. 영적 경험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앞서가고 성경적 근거를 이유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투철한 자기신념으로 하나님을 밀치고 나가는 무례함이 비일비재하다.
하나님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된다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고집때문에 하나님을 당황하게 만들 때가 많다.언제든지 하나님의 일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우선순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수시로 점검해 봐야 한다.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가다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한참이나 하나님을 추월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내가 먼저 시작해 놓고 하나님에게 도와 달라고 강요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것,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도록 하나님께 시간과 공간을 내어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개입하실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실수를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새로운 일을 하실 수 있으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대미문의 일을 언제든지 펼칠 수 있다.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자원이 풍성하다. 하나님의 신비하심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을 인간인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때로 기가막힌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하나님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우습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은 자기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명철이라고 했다.
좁은 소견에 사로잡혀 한치 앞을 못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입을 넓게 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 들이라고 하셨다. 거두절미하고 대충 알아듣는 습관으로 살던 버릇이 부정적인 노예생활의 폐해다. 상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야 한다.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사64:3)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시39:7-8) 어떤 경우에는 마치 우리가 무엇을바라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무엇인가를 좀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우리가 마땅히 간구해야 할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때도많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것, 훨씬 더 많은것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소원과 기도를 자기 자신의 생각에 제한시킴으로써 하나님을 제한하는 위험에 빠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때때로 시편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고백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또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거의 알지 못한다. 내가 할 수있는 말은 오직”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는 고백뿐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식량을 주겠다고 약속했을때 그 백성들은 의심에 가득찬 눈으로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보라. 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세니 시내가 넘쳤으나 그가 능히 떡도 주시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고기도 예비하시랴 하였도다”(시78:19-20)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사막에서 시냇물을 공급하실 수있는지 여부를 물어보았더라면 아마 그렇다는 대답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전에도 그렇게 하셨으며, 다시금 그렇게 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제한된 생각으로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행할 수 없다고 하나님을 제한하고 말았다. 우리의 기도 중에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무한한 신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기 위한준비된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권능에 대해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자신의 생각에 제한받지 않도록 피나는 훈련이 필요하다. 내 안에 인간적인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지 거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지배하고 있는지 항상 점검하며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강하게지배하도록 마음을 내어드리는 연습이 매우 중요하다. 상황에 영향받기 쉬운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흔드리지 말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조급함에 쫓기지 말고 하나님께 시선을고정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움직이시는 방향을 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