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10-14)
두 종류의 방향 — 수직 방향과 수평 방향이 있다. 수평 방향은 전진 방향과 후진 방향이 있고 수직 방향은 상향이 있고 하향이 있다. 구원받는 그리스도인의 방향은 천국 방향 곧 올라가는 방향이 삶의 방향이다. 좁은 길과 넓은 길은 같은 방향에서 길이 좁고 넓은 것이 아니라 정반대 방향의 길이다. 성경은 구원의 원리와 축복의 원리이다. 원리의 특징은 방향의 특징을 갖고 있다. 올라가는 방향과 내려가는 방향이 있다.
위로 향한 방향과 아래로 향한 방향 – 구원받은 사람의 방향은 위로 향한 방향의 인생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느니라 (골3:1-3)위로 향하는 방향은 천국 방향이며 아래로 향하는 방향은 지옥 방향이다.
천국 방향과 지옥 방향의 순서 – 천국 가는 방향과 지옥가는 방향은 정반대 방향이지만 방향의 순서도 정반대다. 천국 방향은 내려가는 방향으로 시작하여 올라가는 방향으로 바뀌고 지옥 가는 방향은 올라가는 방향으로 시작하여 내려가는 방향으로 바뀐다. 인생이 멸망하게 된 이유가 먼저 올라가는 방향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선악과 사건은 하나님과 같이 되게 만든 것이 핵심 원인이다. 선악과 사건은 인간이 순식간에 하나님의 위치로 올라선 사건이다.
천국 방향과 지옥 방향의 순서 – 선악과 사건의 치명성은 마귀 자신이 저지른 범죄 핵심이 ‘높은 구름 위에 올라 하나님에 버금가는 존재가 되려는 것이었다’(사14:12-14) 하나님의 위치에 도전하는 순간 음부로 전락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는 존재가 되려한 천사의 타락이 사단이 된 것이다. 즉각적으로 음부로 쫓겨난 존재가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이다. (계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따응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12:9)
예수님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에 계신다 – 지극히 높은 보좌를 떠나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사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이 계신 곳은 가장 낮은 곳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낮은 곳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에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의사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처럼 인자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9:12, 막2:17, 눅5:31)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을 비난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의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고 급기야 십자가에 처형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낮은 곳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있었다. 열 두해 혈루증 여인은 기어와서 예수님 옷자락을 만졌다. 귀신 들린 아이 엄마는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개 수준까지 낮아진 사람이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졌던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죄인임을 고백했다. 예수님 자신이 지극히 높은 보좌를 떠나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예수와 함께 죽어야 예수와 함께 살린다 – (롬6:4-9)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는 것이 구원이다. 그 과정이 구원의 과정이다. 무덤으로 내려가고 거기서 다시 올리심을 받는 것이다. 예수와 연합하여 십자가에 죽고 예수와 함께 연합하여 부활하는 것이다. 에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시는 것이다.
먼저 올라가게 만드는 마귀의 전략 – 선악과 사건은 인간을 하나님 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게 만들어 꼼짝없이 멸망 당하게 한 것이다. 선악과 사건은 인간이 하나님이 되어 철저히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계략에 인간이 말려든 것이다. 그 결과 모든 인간은 죄인이 되었으니 그 특징이 교만이다. 자존심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교만이 가장 깨닫기 힘들고 깨지기 어려운 부분이다. 자기 스스로 깨지지 못하면 하나님이 깨뜨리신다.
위험한 때 – 위험한 때는 일이 잘 안되고 어려울 때가 아니라 모든 일들이 잘되고 형통할 때이다. 순조로울 때는 방심하기 쉽고 왠만큼 소홀해도 크게 심각하게 생각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방심과 나태함이 치명적이라는 것을 치명적으로 생각지 않는 것이 위험한 것이다. 차라리 어렵고 힘들 때는 안전한 때다. 그때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낮은 자세를 유지한다. 낮은 자세가 중요한 것은 안전할 뿐만 아니라 성공은 높은 곳에 있지 않고 것이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