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1:1-4)

모든 사람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강해 보여도 아무리 똑똑하여도 모든 사람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완벽하고 완전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에도 보면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첫째로 니느웨 사람들입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였고 그곳 사람들은 잔악 무도한 이스라엘과 원수 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악인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니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시대의 선지자 였습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니느웨 사람들이 싫었고 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을 더욱더 받아들이기 싫었을 것입니다. 그런 요나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만 끝내 말씀대로 하지 않고 도망가게 됩니다. 3절을 보면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하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스는 오늘의 스페인으로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니느웨로 가는 거리보다 약 4배나 더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도망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자 하는 불순종의 마음을 가지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허비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입니다. 

누구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니느웨는 회개와 구원이라는 도움이 필요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나에게 말씀을 주셨고, 요나가 그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잘되는 길, 살수있는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진정한 도움이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허나 요나는 자신은 안정된 위치에 있고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민족 앗수르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는 하였으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도망치기 위해 도망자의 길로 갑니다. 요나 1장 3절의 말씀에 보면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가려하니 때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항구에 있었던 것입니다. 요나의 도주를 돕는 상황이 전개가 된것입니다. 희한한 광경입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의 구원을 이루기위해 요나에게 그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고 도우라고 니느웨로 보내려고 하시는데 반면 니느웨 반대편으로 도망하는데 그 도주를 누군가가 돕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냉철하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다시스로 도망 가는 배를 누가 예비한것인가? 하나님은 니느웨를 살리기를 원하시기에 당연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럼 요나일까요?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가기로 결정을 하고 집을 나섰지만 요나가 의도적으로 배를 준비하라고 시킨적은 없습니다. 특히 3절에 “마침 (배를) 만난지라”를 원어로 마쯔(차)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것은 자신이 의도한것이 아닌 발견한것이라는 의미의 단어 입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그런 상황이 벌어져 있어서 자신은 그 배를 탔다라는 것이지요. 그 배는 누가 예비해 놨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 하는 마귀의 소행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마귀에 대해 설명합니다. 마귀는 꾀는자, 속이는자 입니다. 요한복음8장 44절에도 마귀는 거짓의 아비, 죽이는 자로 소개합니다. 그와 같이 마귀는 언제든지 속이고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요나의 도주를 마귀가 도운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요나는 도망길에 마귀의 도움을 받아 더 잘 도망칠수 있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풍랑을 만나게 되고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가게 된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니느웨도 살고 자신도 사는 것인데 마귀의 도움을 받으니 자신도 불행해지고 함께하는 사람들도 죽음의 그늘 아래 있게 된것입니다. 우리도 돌아봅시다. 나는 지금 누구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하나님의 도우심 일까요? 아님 마귀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더 잘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방향이 도움의 정체를 말해 줍니다. 내 인생의 도움이 누구로부터 온것인가? 그것은 지금 가고 있는 신앙의 방향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요나의 상황을 보면 1장 3절에 하나님을 피하려고 욥바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하신 반대 방향인 욥바로 갑니다. 그런데 그것을 원어로 “와이예레브”라는 단어 즉 내려갔다고 표현합니다. 계속해서 3절 후반부에 보면 “배에 올랐더라”라고 하는데 이 올랐다라는 단어가 원어로

“와이예레브”입니다. 내려갔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1장 5절에도 요나가 배 밑층에 내려가서 여기도 (와이예레브)라고 하며 이제는 깊이 잠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장 6절에 결국 물고기 배속까지 내려 갔다고(와이예레브)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명령 반대로 살면 마귀의 도움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도움을 받으면 결국 계속 “내려가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풍랑만나 나도 죽게 되고 내 주위의 사람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깨닫게 되고 회심합니다. 3장에 보니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로 임하고 요나가 이제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갑니다. 가서 하루길을 다니며 회개를 선포하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합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니느웨 한 도시를 살리게 됩니다. 내 신앙 생활이 말씀을 따라 가고 있습니까? 신앙이 살아나고 주위를 살리는 삶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따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우리 신앙의 방향을 냉철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방향을 바꾸는 기도: 마귀의 도움을 받아 다시스로 도망치다 죽음의 문턱까지 이른 요나를 말씀의 길, 사명의 길로 전환할수 있었던것은 바로 2장에 나오는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생각을 바꾸는 기도 입니다. 2장 7절을 보면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라고 설명합니다. 영혼이 곤고할때 하나님을 더욱더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의 은혜, 그분이 나에게 주신 말씀, 신앙의 생각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두번째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8절에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은혜를 버렸사오나”의 고백과 같은 회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거짓된 세상을 쫓아 다시스로 가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셋째로 고난의 신음을 감사와 재헌신으로 바꾸는 기도입니다. 9절에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하나님을 체험한자는 물고기 뱃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심을 감사할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살것인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갱신하는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신앙입니다. 

결론으로 마귀의 도움을 받으면 마귀를 돕게 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하나님의 일을 돕는 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