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1-4) 

순종의 두번째 요소(물질) – 구원의 확신과 양식에 대한 확신은 일치하는가 아닌가? 기독교 구원은 영의 구원, 혼의 구원, 육의 구원, 물질의 구원, 환경의 구원을 포함한 총체적, 전인적 구원을 말한다. 영적 구원의 확신과 양식의 구원은 일치한다. 현세 구원과 내세 구원이 하나인 것이다. 기독교 구원은 실제적이며 현실적이다. 

물질 세계의 근원 – 인간과 물질은 스스로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창조주에 의해 존재가 시작된 것이다. (창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피조물의 인정 여부에 불구하고 피조물은 창조주에 의해 존재하는 것은 숙명적이고 불가항력적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가 곧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근원이시고 말씀이 근원이신 것이다.

물질 세계의 목적 –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보이는 세계가 존재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존재인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주권 – 국민이 국가의 법에 대하여 불순종이 불가능한 것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부정하지 않지만 그의 말씀은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착각이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행위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것이다. 말씀은 하나님의 의견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다. 창조주요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거부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하나님에 대한 거부는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 – 창세기 1장에서 창조하시는 장면을 설명할 때 7,9,11,15,24절에 반복해서 나오는 말씀이 “그대로”이다. 가나 혼인 잔치 포도주 사건에서도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능력으로 말씀하시는 즉시 말씀 그대로의 역사가 일어난다. 상황과 환경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천지 만물이 그대로 복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이다(계22:13) 인류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의해 지배되고 존재하는 것이다. 

물질은 하나님의 공급 보장의 증명 수단—(마6:26-33) 생계 문제에 관한 말씀 중에 이방인과 자녀가 나온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이방인은 물질 문제를 본인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반면에 자녀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책임진다. 이방인은 물질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지만 해결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자녀는 물질 문제 해결이 목표가 아니라 출발이다. 하나님의 공급 보장에 의해 출발 단계에서 이미 해결된 삶이 된다. 말씀을 불순종하는 이방인은 해결이 불가능한 삶이지만 순종하는 자녀는 이미 해결된 삶이다.

물질은 하나님의 생명 보장의 증명 수단 -- (마6:25-26)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물질로 가능한 양식 뿐만 아니라 물질로 해결이 불가능한 생명이야말로 하나님의 보장이 필요하다. 

물질은 소속을 증명한다 – 마6:19-21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물질은 나 자신이 하늘에 소속한 자인지 땅에 소속한 자인지를 증명한다. 나귀는 이삭을 태워 하나님께로 운반하고 나무는 이삭을 태워서 하나님께 바치는 역할을 한다. 

이삭을 드린 결과 – 물질(나귀, 나무)은 이삭을 드리는 수단이다. 이삭을 드린 후 하나님의 여호와 이레의 응답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께 온전히 바쳤을 때 확인되는 것이 있다. 여호와 이레이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나의 미래를 예비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심이 있는 인생과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없는 인생이 있다.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인생이 있고 내가 경영하는 인생이 있다. 여호와 이레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맡겨진 인생만이 여호와 이레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