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0:29-37
믿은 후에 달라지는 것 – 한국 기독교 초기, 양반 신분과 천한 신분의 차별이 극심했던 시절에 어느 양반이 예수 믿는 종에게
힐문을 했다. ‘예수 믿으면 종(노예)이 양반 될 수 있냐’ 종이 대답했다. 천한 종의 신분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다운
종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예수 믿으면 세상적인 신분과 계급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 다운
인생이 되는 것이다. 같은 직업, 같은 일을 해도 그리스도인다운 자세와 인격을 가지고 다른 계급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삶을
사는 것이다.
강도 만난 곳 – (신앙의 방향성) 강도 만난 때와 장소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도중이었다. 강도를 만나는 때와 장소는
예측할 수 없지만 위험성을 가지는 때와 장소는 상식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곳들이
있다. 강도 만난 사람도 아마 미리 위험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로 가고 있었느냐 하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강도를 만나게 되는 위험한 행동이었다는 사실이다.
강도 만난 곳 – (인생의 중심) 예루살렘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고 여리고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예배 중심의 삶이
있고 세상 중심의 삶이 있다. 세상에서 교회로 왔다가 세상으로 돌아가는 삶이 있고 교회에서 세상으로 갔다가 교회로 돌아오는
삶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실제 내면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이 다른 것이다.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 중심이 있고 세상 중심이 있다.
여리고 방향은 강도를 만나는 방향이다 – 여리고를 향하는 사람이 자기의 방향과 행동을 완벽하게 합리화하고 정당화해도
결과는 강도를 만나는 방향이다. 길이 험한 산길이든지 평탄한 고속도로이든지 길의 상태가 아니라 방향이다. 죄악의 방향은
정당화에 관계없이 멸망이며 사망이다. 구원의 방향은 정당화 합리화에 관계없이 생명이다. 여리고를 향해 출발하는 순간 이미
강도를 만나도록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여리고 방향은 내려가는 방향이다 – 여리고 방향은 내려가는 방향이다. 강도 만난 사람이 내려간 그 길을 어느 제사장이
내려가다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났고 레위인도 만났다. 내려가는 방향을 가는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 뿐이 아니었다. 신분에
관계없이 내려가는 가는 사람은 강도 만날 가능성에 노출된 사람들이다. 신앙의 추락 과정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마귀의 공격에
노출된 사람으로 위험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강도 만난 자는 구원이 필요한 자이다 – 마침 그곳을 지나던 제사장은 강도 만난 자를 외면하고 황급히 지나갔다. 본인도강도의
피해를 두려워하여 도망치듯 피했다. 율법이 구원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제사장들의 제사 행위가 인생을 결코 구원 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가 죄를 드러내는 역할은 가능하나 죄의 해결은 불가능하다. 예수님 공생애 동안 특별히 예수님을
핍박했던 무리 중에 대제사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잘 말해준다.
강도 만난 자는 구원이 필요한 자이다 – 제사장도 그대로 지나쳤고 레위인도 그냥 지나쳤다. 제사장의 제사를 돕는 레위인도 또
제사장도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도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한 몰인정한 사람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고 강도 만큼이나 나쁜 사람으로 매도할 수 있으나 실상은 그 자신도 강도
만날 수밖에 없는 자이다. 여리고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율법의 정신을 실천한 사람 – 어느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한 사건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율법사의
시험하는 질문을 받고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율법의 핵심을 반문했을 때 율법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을 듣고 사마리아인의 선행을 소개하며 과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 사람이
누구냐를 묻는 것이다.
율법의 정신을 실천한 사람 – 인간을 구원한 하나님의 동기는 사랑이다. 율법의 핵심이 사랑인 이유가 것이다. 종교적 지도자의
위치가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인과 같이 치유하는 사랑이 그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포도주와 기름을 붓고 치료한
다음, 그들의 차후 치료비까지 준비하고 감당해 주시는 모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오늘 강도 만난 자들은 선한
사마리아인 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치유되고 구원받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