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보면 20여개 정도의 교회가 나온다. 그 가운데 칭찬받은 교회와 이상적인 교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더 끄는 교회가 있다. 고린도 교회이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면에서 약점이 많고, 문제가 많은 교회였다. 사실 우리에게도 그런 약점이 있고, 연약함이 있고, 흠이 많고, 실수가 많기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 같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 면에서 탁월했고, 열심과 열정면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 교회였다. 

그러나 많은 문제가 있어 그 교회를 개척한 사도 바울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바울이 서신을 통해 문제점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권면하고 교훈한 것이 바로 고린도전서이다.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없었더라면 고린도전서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꼭 문제가 나쁜 것 만은 아니다. 문제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풀어가고 극복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연약했다. 서로 편이 갈려 파당을 만들고, 서로 비방하고, 미워하면서 싸웠다. 

성적으로도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워낙 고린도는 도시가 성적으로 부패해 있었기에 거기에 물들어 있던 사람들이 예수 믿고 갑자기 거룩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 성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기 일쑤였다. 그들은 회개하고 또 죄를 짓고, 그래서 울고 또 기도하고, 또 죄를 짓는 약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당사자들끼리 합의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혼, 재혼, 독신의 문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문제, 성령의 은사를 사용함에 있어서 교회를 혼란하게 하는 문제들이 있었다. 또한, 고린도 교회에 이단이 들어와서 성도들을 부추겼다.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나느냐?’ 그러자 믿음이 흔들리면서 예수님의 부활까지 의심했다. 이런 일들은 어린아이처럼 영적으로 약해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생각하는 것, 깨닫는 것,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아서 생겨난 일들이었다.

성숙한 신앙인과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의 차이가 무엇인가? 성숙한 신앙인은 자신의 신앙을 스스로 지켜갈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유혹이 와도, 어떤 시련이 와도, 자신의 신앙을 굳게 지키고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교회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아서 하는 사람이다. 내게는 힘든 일일지라도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면 그 일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

반대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겨우 겨우 믿음의 걸음마를 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서 억지로 교회당에 나오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겨우 겨우 봉사하는 사람이다.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다. 모든 것이 나 중심적이다. 내 기분과 내 감정과 내 이익이 하나님보다 앞선다. 이런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면,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사람처럼 아슬아슬해 보인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믿음이 흔들리는 나약한 사람이길 원치 않으신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면서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힘주어 권면한다.<고전16:1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남자답게 강건하길 원하신다. 남자다운 강인함, 남자다운 용기, 남자다운 힘을 가진 성도가 되길 원하신다.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상대방의 허물과 약함을 덮어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 죄를 거부할 줄 아는 사람,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에 욕되지 않게 하는 사람,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을 각오 할 줄 아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약한 자가 아니다. 세상을 정복해야 될 하나님의 놀라운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제자이다. 우리는 강해야 된다. 남자처럼 강건 해야 한다. 십자가의 군병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십자가의 군병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 수년 동안 교회에 출석하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교회의 직분을 가지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지만 초신자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신자들이 많다. 

기저귀가 젖었는지 봐 주어야 하고, 우유가 너무 뜨겁지 않은지 볼에 대 봐 주어야 하고, 장난감으로 늘 같이 놀아 주어야 만족하는 성도들이 너무 많다. 주님은 우리가 십자가의 군병이 되어 원수 마귀를 물리치기를 원하시고 계시는데, 교회가 군대라기 보다 신생아들로 가득찬 산부인과 병원처럼 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된다. 신생아는 아무리 많아도 마귀 한 마리와 대항하여 싸울 능력이 없다. 

그러니 마귀는 신생아들로 가득찬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우리는 신생아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성장하여 장성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남자답게 강건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믿음의 대장부가 되어야 한다. 마귀를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닌, 마귀가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