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조난을 한 난파선의 유일한 생존자가 무인도 해변으로 떠밀려갔다. 인생은 바다를 건너가는 항해와 같다. 바다를 건너는 항해는 예기치 않은 풍랑으로 예외없이 고생을 하게 된다. 바다에서의 조난은 인생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한다. 또한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인도에 갇혀 그야말로 고립무원이 된 그는 자신을 구해달라고 도움을 구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 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아쉬울 것 없는 환경 가운데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았어도 표류하다 무인도에 떠 내려와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절망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인생은 절망 앞에 부딪혀야 비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찾게 된다. 아쉬운 것 없는 평상시는 자신도 모르게 신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 절망에 부딪혀서야 하나님을 찾게 된다. 비바람을 피하고자 작은 오두막을 짓고 기도를 올리며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기도가 생업이고 기도가 최대의 일과이며 목표이고 목적이었다.
기도가 유일한 생명선이며 수단과 방법이 된 사람은 하나님이 생명 자체, 인생의 전부가 된다. 무인도에 유배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존재가 그러한가? 번화한 도시 한가운데서 무엇이든지 가능한 상황에 있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인생은 가족 관계에서도 각자 자기의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 끼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 기도 응답을 기다리며 수평선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는 지쳐만 갔다. 기도하면서 처한 상황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낙심하기 쉬운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실제적으로 점진적으로 징조를 보이며 서서히 나타나기도 하지만 특별한 경우도 흔하다.
그러던 어느 날, 먹을거리를 찾아 뒤지고 다니다 돌아왔는데 오두막이 완전히 불에 타 잿더미가 돼 있었다. 남은 거라곤 재와 하늘로 피어 오르고 있는 연기뿐 이었다. 슬픔과 분노로 망연자실한 그는 하늘을 향해 절규했다. ”하나님, 저에게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 건가요?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아예 저를 버리셨습니까?” 절망에 빠져 기도조차 포기하고 싶은 좌절에 몸부림쳤다.
무인도에서의 기도는 어떤 기도이며 기도의 자세는 어떠한가 기도할 때 스스로를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기도의 대상에 대한 자세이다. 기도에 대한 응답은 내가 원하는 형태의 응답 방식, 응답 내용으로 특정하기 쉬운 것이 사람들이 실수와 오해이다. 분명한 것은 응답은 하나님의 방식과 형태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사전에 나름대로의 상상을 가지고 응답을 기대하고 바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오랜 직장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독자적인 사업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인내하며 기도했으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깜짝 놀랐다. 회사에서 갑자기 해고 통지를 보낸 것이다. 독자적인 사업은 고사하고 다니던 직장마저 잃어 버리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따져 물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기도한 것이 이렇게 되기를 위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과연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와 의도를 몰라서 그랬을까?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네가 회사를 그만 두어야 사업을 허락할 수 있는데 그만 두지 않아서 그만 두게 한 것이다.’ 우리의 가지고 문제는 풀어야 할 객관적 문제 이전에 응답 받을 자세가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인도에 있던 그 사람은 이튿날 아침 배가 섬으로 다가오는 소리에 잠을 깼다. 드디어 그를 구하러 온 것이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선원들에게 물었다. ”내가 이 무인도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나요?” 선원들은 “항해를 하고 있다가 당신의 연기 신호를 봤습니다”라며 “당신이 구조 요청 신호로 그 연기를 피운 것 아니었나요?”라고 반문했다.
오두막이 불타면서 피어 오른 연기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보낸 응답이었던 것이다. 기도하는 동안 상황이 점진적으로 좋아지는 것을 볼 수도 있으나 반대로 악화되는 경우도 흔하다. 상황의 진전이 인간적인 의도대로가 아니라 해도 하나님의 존재 하심은 변함이 없고 그의 예비 하심은 변함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