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19:37-40)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두가지 현상 – <제자들의 환영과 바리새인의 책망> 상반된 두가지 현상은 이미 천지 창조 시작과 함께 시작 되었다. 가장 먼저 창조된 것이 빛이다. 동시에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하셨다. 빛과 어두움의 존재는 창조에서부터 종말까지 계속된다. 하나님을 싫어하는 현상(롬1:28), 하나님을 기뻐하는 현상(합3:18). 하나님을 찬송하는 무리, 하나님을 괴롭게 여기는 무리(사43:21-22)이 나타난다.

두 가지 반응(정체성 증명) – 하나님에 대한 반응은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한다. 하나님께 속 한자와 속하지 않은 자가 증명(요일4:6) 되고, 마귀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요일3:10)가 증명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자와 밖에 있는자, 하나님 나라안에 있는자 밖에 있는자,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자 밖에 있는자, 소망 있는자와 없는자(엡2:12)가 증명된다. 인류는 두줄기의 혈통으로 이어져 내려간다. 가인의 혈통과 셋의 혈통으로 택함 입은 자와 버림 받은 자의 혈통으로 이루어진다.
두 가지 반응(운명 결정) – 예수님에 대한 반응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동시에 나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인생의 운명은 불가항력적인 환경적 요소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신앙적 사고방식이다. 인간의 생사화복의 결정권을 가지신 예수님에 대한 반응이 인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생사화복은 환경과 상황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결정에 있다. 그 하나님의 결정의 근거는 우리의 태도와 반응에 있다.

예수님의 대한 바리새인의 거부 – 인간의 거부가 하나님의 능력을 무효화할 수 있으며 인간의 하나님 부정이 하나님의 존재를 없게 할 수 있는가? 바리새인의 거부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제한하고 무력화 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들 자신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결과를 맞이했다. 그들만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갔다. 하나님은 만물의 원인이요 근원이시다. 그 원인에 대한 부정은 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소리치지 않는 사람과 소리치지 못하는 돌의 공통점 – 사람이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고 지식이 있으나 하지 않으면 생명이 없고 능력이 없고 지식이 없어 못하는 돌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할 수 있으나 안하는 사람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돌과 다른 점이 없는 것이다. 눈이 있어도 감고 있으면 눈이 없는 것과 같고 입이 있어도 찬양하지 않으면 입이 없는것과 같고 귀가 있어도 듣지 않으면 귀가 없는것과 같다. 생명이 있어도 꼼짝 않고 누워 있으면 생명이 없는것과 같다.

있으나 안하는 것과 없어서 못하는 것에 차이가 있는가 – 결과적으로 차이가 없다. 건강이 있어도 건강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며 생명이 있어도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생명이 있기는 하지만 용도가 있고 사용되지 않으면 가치 없는 것이 된다. 가치 없는 인생은 끝이 다가오는 것을 부정하고 준비를 하지 않는다. 가치있는 생명, 가치있는 생명은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는가 못 받는가에 달려 있다.

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고 없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다 – 예수를 거부하는 사람(바리새인들)은 자기 기준, 자기 고집, 자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쓰임 받지 못한다. 돌은 자기 기준, 자기 고집, 자기 목적이 없기 때문에 쓰임 받는다. 하나님이 지혜 없는 미련한 자, 힘이 없는 약한 자, 부요한 자가 아닌 없는 자를 쓰시는 이유가 그것이다.(고전1:27-28) 인류 구속을 위해 쓰임 받으신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시고 낮추시고 죽기 까지 복종하셨다.(빌2:7-8)

돌의 특징(불변성) – 돌은 변형과 변질이 없다. 돌판에 십계명을 새기고 길갈에 세워 놓은 요단강 기적의 기념비가 돌이다. 돌의 자세와 자리 지킴이 중요하다. 자세가 부서지지 않아야 하고 자리를 임의로 옮겨 다니지 않아야 한다. 주인의 손에 의해서만 옮겨진다. 주인의 손에 의해서만 다듬어진다. 혼자 변형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믿음은 많은 시련과 시험을 통과 하면서 인정받는 믿음, 쓰임받는 믿음이 된다.

돌의 특징(현재성) – 예루살렘 입성하시는 현장에 있던 돌은 적어도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 시점으로 보면 600년전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 돌이 되었던 다른 돌이 되었던 600년전 예언된 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곳에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고 그 때에 그곳에서 쓰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 기적을 위해 쓰임받은 그릇은 그 때 그 곳에 있었던 6개의 돌항아리였다. 내가 있는 현재의 시간과 장소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절대 조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