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6, 2023
죽음에게 굴복할 것인가 하나님께 굴복할 것인가
당시의 세계 패권 국가는 바벨론이었다. 세계의 지배자로 등극한 느부갓네살은 세계의 황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신격화하기 위해 신상을 만들게 하고 온 백성에게 경배하게 한다. 신상에게 경배를 거부한 다니엘 세 친구가 왕 앞에 끌려왔다. 몇 십리 밖에서도 보일 정도로 높게 세운 신상 앞에 절하라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거부할 경우 즉시 풀무불에 던져져 화형 당하는 것이다. 우상 숭배 명령은 사형선고와 같다. 우상숭배하면 하나님을 버린 영적 사망자요, 우상숭배를 거부하면 화형으로 죽게 된다. 다니엘 세 친구는 죽음 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다.
하나님을 모욕 하느니 차라리 화형 당하기로 결심했다. 하나님을 버리고 목숨을 지키느냐 목숨을 버리고 믿음을 지키느냐, 우상과 권력 앞에 굴복하기보다 오직 하나님께만 굴복하기로 뜻을 확실히 했다. 생명을 누구에게 걸 것인가? 느부갓네살에게 걸 것인가 하나님께 걸 것인가?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십 가지 합리화 방안을 짜냈을 것이다. ‘그냥 겉으로만 절하는 거야. 진짜 마음은 아니면 되잖아. 절하고 일어나자마자 용서를 구하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실 거야. 계속하는 것도 아니고 딱 한 번 뿐이야. 십계명 중에 단 하나만 어기는 것 뿐이야. 믿음을 버리는 것은 아니야.’
우리의 상상력은 무한대의 아이디어로 죄를 합리화 시킨다. 죄에 대한 합리화는 하나님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하나님 관계의 단절이 하나님의 계시의 단절을 가져오고 더 깊은 영적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믿음의 진실성 (integrity)을 타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개입하실 여지를 차단하게 되고, 우리 방식으로 독자적으로 문제를 처리하면 믿음의 방정식에서 하나님을 빼게 되며 상황을 우리 방식으로 조종하려고 애쓰면 이적을 놓치게 된다. 만일 다니엘 세 친구가 믿음의 진실성을 타협하여 우상 신상에게 절했다면 맹렬한 풀무불에 던져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아닌 느부갓네살이 그들을 구한 것이 된다. 또 그들이 풀무불 속에 던져지지 않은 것이지 맹렬한 불 속에서 건져 낸 것은 아니다. 그들은 믿음의 테스트에서 탈락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거를 놓쳐 버린 것이다. 목숨은 건졌을지는 몰라도 믿음은 버린 것이다. 육신의 생명은 지켰는지는 모르지만 영혼의 생명은 상실한 것이다. 믿음이 기적의 방아쇠를 당겼고 하나님의 존재를 직접 확인하게 하고 그 믿음이 영원한 생명보험이 되고 종합보장 보험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게 된다. 죽음 앞에서 믿음의 진위와 유무와 대소가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더 이상의 설명과 증명이 필요 없게 된다.
직장의 상사나 사장이 30미터 높이의 우상 신상을 세우고 직원에게 절하라고 하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직장 상사가 거래처에 뇌물을 주거나 장부를 조작하라고 하면 그렇게 까지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너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믿음의 진실성을 더럽혀야 한다면 차라리 일자리를 잃어 버리는 편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의 진실성을 버려야 어떤 기회를 얻는다면 그것은 기회가 아니다. 믿음을 버려야 얻을 수 있는 성공은 믿음은 물론 인생 전체를 잃어 버리는 마귀의 함정일 뿐이다. 절을 안하면 느부갓네살 관계가 깨어지고 절을 하면 하나님 관계가 깨어진다.
느부갓네살의 호의와 혜택을 입는 선택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선택이 있다. 어느 쪽을 택하고 어느 쪽을 포기할 것인가? 믿음의 사람은 엄청난 규모의 세상적 혜택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쪽을 택한다. 세상 모든 것을 얻는 선택이 있고 세상 모든 것을 잃는 선택이 있다. 느부갓네살에게 굴복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세상 나라는 왕의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 왕의 생명조차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우리로 하여금 왕에게 굴복하게 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결정이다. 왕이라 할지라도 자기 목숨 조차 자기 손에 있지 않다.
믿음을 지키는 결정은 모든 것의 상실은 물론 불 속에 던져질 각오를 해야만 가능하다.믿음의 결정이 불 속에 던져지는 것은 피하지 못하겠지만 불에 타지 않도록 하게 한다. 우리를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주시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들이 잘못 살고 있다는것을 자각하게 한다. 믿음의 확신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은 경이로운 방법과 능력으로 존재를 나타내신다. 어떠한 사탄의 위협과 유혹 앞에서도 변함없이 믿음을 지키고 있으면 이미 불 속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보호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게 된다. 지금도 불 속에서 준비하고 계신다. 그 분에 의해서 구조되려면 먼저 풀무불이라는 맹렬한 위험 속으로 뛰어 들어야한다.
인간의 최대 숙제는 죽음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수포로 만들기 때문에 궁극적인 두려움의 대상이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간은 실패로 끝난다. 죽음을 향해 뛰어 들 수 있는 사람만 죽음을 이기고 승리한다. 죽음을 승리해야 한다. 믿음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믿음이 죽음을 이기고 최후 승리자가 되게 한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확고한 사람은 죽음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께만 굴복한다. 오직 전능자만 경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