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견디는 자(마24:8-13)
재난의 시작 – 초림주는 구원의 주로 오셨고 재림주는 심판의 주로 오신다. 재림하시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시대적 상황을 직접 설명하시는 내용이 마24장이다. 8절에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는 말씀의 앞 부분은 물리적 재난(Physical Disaster), 뒷부분은 영적 재난(Spiritual Disaster)을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실제로 종말 현상이 일어나고 영적인 분야에도 재난이 일어난다. 필연적인 재림은 필연적인 종말 징조 뒤에 이루어진다.
신앙 사수 보다 신앙 배도(배교)가 득세하는 시대 –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시대마다 그리스도인들이 타협하지 않는 신앙 때문에 기득권 세력의 공공의 적대 세력으로 낙인이 찍히고 모함을 받고 매도 당하는 예가 적지 않았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방해하는 존재로 여기고 이단으로 매도하여 처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말세에는 배도와 배교가 일반화되는 현상을 보게 된다.(살후2:3)
질서보다 무질서가 득세하는 시대 –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며”(10절) 극단적 개인이기주의가 팽배한 현상은 가족 관계, 혈육 관계, 교우 관계, 동족 관계 속에서도 분열과 분쟁이 극심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사사 시대의 상황에 대한 표현이 삿21:25에 ‘사람들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데로 행하였더라’ 모든 관계가 사분오열되어 스스로 붕괴되는 시대적 현상이 종말적 현상이다. 가족관계에서 조차 양심보다 비양심이 득세하는 시대이다.
진리보다 비진리가 득세하는 시대 – 순수복음보다 변질 복음이 득세하고 신본주의 신앙보다 인본적인 신앙이 득세하는 시대는 거짓 선지자가 주류를 이루고 종교계를 주도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다수를 이루는 비진리 세력이 소수의 진리 세력을 비진리 세력으로 호도하고 매도하는 현상이 심화된다. 소위 가짜가 대세를 이루고 진짜를 가짜로 매도하고 진짜를 이단으로 탄압하는 일이 정당화되는 시대가 왔고 그러한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합법보다 불법이 득세하는 시대 – 불법이 정상이 되고 합법이 비정상이 되는 시대에서는 불법이 합법을 위장하고 합법을 불법으로 매장하는 현상이 자기의 불법을 합법이라는 세력과 그 합법이 합법이 아니라 불법이라는 세력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법이 성행하고 합법이 희귀해지는 시대가 종말이다. 동성애가 불법인 시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합법이 되어 있다. 지금은 동성애를 불법이라고 하는 것이 불법이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이다 –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는 그 믿음이 세상과의 대결에서 굴복하는 믿음이 아니라 정복하는 믿음이다. 세상을 정복하는 믿음은 인위적인 믿음이 아니라 신본적인 믿음이다.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고 그 이김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요일5:4) 끝까지 견디는 믿음과 그렇지 못한 믿음의 차이는 영적 믿음이냐 혼적 믿음이냐에 있다.
하나님과 사람의 상충 – 사도 바울은 갈1:10에서 ‘내가 사람을 좋게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만일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단언한다. 엘리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던 것은 어느 편이 하나님인줄 몰라서가 아니라 아합 왕의 눈치 때문에 불분명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분명히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가 이것이 확실하고 확고해야 한다.
말씀과 이해 관계의 상충 – 고전10:31에서 ‘사람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빌1:20에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하노라’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현실적이해 관계가 상충 될 때가 있다. 말씀대로 하면 손해를 보고 말씀대로 안하면 손해를 보지않고 성공할 수 있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울은 백성의 여론이 무서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것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다.
믿음의 크기와 문제의 크기 – 문제는 믿음의 크기이다. 평생 문제를 떠나서 살 수 없다.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이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믿음의 크기는 문제와 비교해야 알 수 있다. 문제 해결은 믿음의 크기가 문제보다 커야 한다. 문제보다 큰 믿음을 유지하는 방법은 도전하는 것이다. 목표의 수준을 높여 도전하는 것이다. 더 큰 수준의 헌신, 충성, 사명 감당을 도전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현재 내 실력보다 높은 수준을 도전하는 것이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 세상을 감당치 못하는 사람 – 히11:35-38에서 믿음의 조상들의 발자취를 보면 ‘희롱과 채찍질, 결박과 옥 갇히는 것, 돌로 맞고 톱과 칼에 죽고 궁핍 환란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세상을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끝까지 이길 수 있는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