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격적 피조물과 달리 인격적 피조물인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공동체 생활의 성공을 위해 법을 만들고 법에 의해 만인이 법에 의한 약속 관계가 성립된 상태에서 약속을 지켜야 하는 필연적 운명 속에 살아간다. 그 약속 관계는 이해 관계가 필연적으로 반영되어 있으나 분명한 것은 약속 관계가 이해 관계를 우선한다는 사실이다. 인생의 불행은 이해 관계가 약속 관계를 우선하여 약속을 파괴할 때 일어난다. 

최초의 불행이 에덴에서 시작된 것을 바로 인간이 이해 관계를 우선하여 하나님과의 약속 관계를 파괴 한데서 비롯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인생에 있어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법을 지켜야 하는 약속 관계이다. 죄는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괴하면서 죄가 시작되고 죄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죄인의 대표적 특징이 이기적인 것이다. 이기심이 이해 관계를 약속 관계보다 우선시하고 이해 관계와 약속 관계가 상충될 때 이해를 위해 약속을 쉽게 파기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한다. 

구원 전과 구원 후의 대표적 변화는 하나님과의 약속인 말씀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는 것이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약속 관계에 있다. 선악과 약속에서 시작되어 종말까지 약속 관계는 지속된다. 구원 후의 삶은 말씀을 생명 이상으로 여기고 생사가 말씀에 달린 것을 알고 철저히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이해 관계를 초월하여 약속 관계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뿐이다. 지식과 재능과 인격의 연마가 구원을 가능케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약속의 말씀 준수 역시 구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기적인 악한 본성이 바뀌지 않은 인간에게 더 많은 물질, 더 많은 권력과 힘은 더 많은 악을 행하는 도구가 될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선악과를 먹었고 그 아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이기적인 인간의 악한 본성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지도자를 선택하는 청문회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학벌과 학식과 실력이 악한 본성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헌법재판관 되겠다는 판사가 자신이 맡은 재판과 관련 있는 기업 주식에 거액을 투자했고, 그 배우자는 주가에 영향을 주는 주요 공시를 전후해 주식을 대량으로 사고팔아 내부 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그러고도 감투를 쓰겠다고 나서서 말로는 한 술 더 떠서 “헌법재판관이 되면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한국 청문회 장면이다. 

노예를 해방시킨 미국 대통령 링컨은 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다. 대통령 되기 전 변호사였던 그는 늘 셰익스피어를 펴놓고 말과 글을 연마했다. 민주주의의 뜻을 가장 잘 표현한 게티즈버그 연설도, “노예제 찬반으로 분열된 나라를 그대로 두고 번영을 이룰 수 없다”며 단결을 호소한 ‘분열된 집(House Divided)’ 연설도 그냥 나온 게 아니다. 1860년, 유력지 시카고 트리뷴은 링컨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자며 그 이유를 이렇게 썼다. 

‘그는 음모를 꾸미거나 정치적인 야합을 할 사람이 아니다.’ 믿을 수 있는 공직자 후보란 얘기였다. 말을 잘해서 받은 평가가 아니었다. 그는 냉철한 변론으로 유명했지만 돈 계산에선 손해를 보면서까지 남을 위하는 처신으로 더 유명했다. 링컨 덕분에 농장이 은행에 넘어갈 뻔한 위기에서 벗어난 한 의뢰인이 50달러를 내놓았다. 링컨은 “10달러면 되겠소”라며 40달러를 돌려줬다. 수임료를 먼저 받은 사건은 검토해보고 승산이 없으면 돈을 전액 돌려줬다. 이익 앞에서 그는 계산에 둔한 바보가 되는 쪽을 택했다. 

‘뱀처럼 영리 한데도 비둘기처럼 무해한’ 변호사란 명성이 전국에 퍼졌다. 그 명성이 무명의 시골뜨기 변호사를 단숨에 백악관 주인으로 밀어 올렸다. 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우리 국민은 링컨 같은 후보는커녕 이익 앞에서 의로움을 버리고, 자신에게 손해될 일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는 삶으로 일관해온 사람들 때문에 마음을 상한다. 자기 이익을 위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리 만들어준 권력자의 노예로 전락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스탈린 시절 옛 소련 공직자들은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하며 자리를 보전했다. 하지만 국민이 자신의 주인임을 자각한 이들도 있었다. 2차대전 당시 소련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 수백만 명이 900일 가까운 독일군의 봉쇄 속에서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었다. 그곳 종자 보관소 직원 수십 명도 죽었는데, 사망 장소가 쌀과 밀로 가득한 곡물 창고였다. 국민이 연구하라고 준 것이지 먹으라고 준 게 아니라며 쌀더미 옆에서 아사(餓死)했다. 스탈린이 아니라 ‘어머니 러시아’에 봉직하는 공직자라는 사명감으로 그렇게 했다.

법을 지키는 자는 법의 보호를 받고 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를 누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말씀의 보호와 보장이 있는 삶을 살 게 된다. 생명과 축복을 보장하는 말씀에 의해 생명과 복을 누리는 것이다. 이해 관계와 말씀이 상충될 때 말씀을 지키기 위해 과감히 이해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며 순종이며 참된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