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나 존재냐”(To Have or to Be)의 작가 에릭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을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se)로 정의하였다. Homo는 흙이라는 Humus에서 온 단어로서 인간을 뜻하고 Esperanse는 희망을 뜻한다. 인간은 “희망을 가진 흙”이라는 것이다. 흙의 가치는 유일한 희망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흙에서 시작되었으나 하나님의 생기가 주어져 하나님의 형상이 된 영적 존재이다. 희망은 영적 존재인 사람에게만 주어지고 희망은 생명적 의미를 가진다. 희망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과 같다. 희망이 없을 때 사람은 살아갈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단테가 갈파(喝破)한대로 지옥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곳이다.희망과 영원히 격리된 곳이 지옥이다. 생지옥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살아난 빅터 프랭클 박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 희망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증언한다. 희망이 허상인가 실상인가? 희망이 막연한 것인가 실제적인가는 믿음의 여부에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이기 때문이다.(히11:1) 

겉으로는 화려한 것 같아도 절망 속에 사는 인생이 있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으나 희망에 넘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구름 아래는 천둥 번개 속에 폭우가 쏟아져도 구름 위에는 찬란한 태양이 태고적부터 빛나고 있다. 환경과 상황이 풍랑에 요동쳐도 하늘과 땅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다 위를 유유히 걸어 오신다. 

죄악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희망이 가능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의 희망이고 인류의 희망이다. 온 세상에 단 하나의 희망이 있으니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것이다. 죽음은 절망의 끝을 말한다. 키에르 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그 절망을 완전히 무력화 시킨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절망이 무엇인가, 희망과의 단절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명과의 단절(斷絶)이다. 세 가지의 단절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단절이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불순종한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된 존재가 된다. 죄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말한다. 그것이 영적 죽음이다. 

둘째는 영과 육의 단절이 육신의 죽음이다. 영적 죽음이 육신의 죽음의 원인이다. 영의 생명의 상실된 육신의 생명은 시한부 생명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생명이 단절되면 육체가 부패하는 것과 같이 영이 죽은 혼은 부패하게 된다. 부패된 상태(상실한 마음)가 롬1:28-31에 모든 불의,추악,탐욕,악의,시기, 살인,분쟁,사기,악독,교만,거역,우매, 배신, 무정,무자비한 자이다. 이미 사형이 결정된 자로 하나님이 정하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셋째는 천국과 지옥의 단절이다. 불행은 행복과의 단절이며 지옥은 천국과의 단절이다. 천국과의 단절은 행복과의 단절이다. 행복과 축복과 격리된 인생이 지옥 인생이다. 인생 전반에서 단절의 아픔을 겪고 있다. 인간관계의 단절, 행복과의 단절, 축복과의 단절, 승리와의 단절로 인한 고독과 불행과 패배와 저주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의 감옥에서 갇힌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과 단절된 인생이다. 

사망이 모든 절망의 원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이기 때문이다. 절망의 해결은 사망의 해결에 의해서만 가능하다.사망의 해결은 죽음을 이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으로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영원히 사망을 이기고 절망을 이긴 인생이다. 

사단은 인간을 파멸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 인간을 파멸시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끊임 없이 마음을 공격하여 하나님과 단절 상태에 있도록 유도하여 절망이 지배하도록 만든다. 사단은 문제를 통해 육신적(물리적) 패배 보다 영적인 패배를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를 떠날 수 없는 인생은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끊임없는 싸움을 해야 한다. 날씨의 변화처럼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을 볼 수 있다. 희망과 절망, 기쁨과 고통, 즐거움과 슬픔 사이를 수시로 오가는 변화 무쌍한 이유는 환경(상황) 중심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나님 중심의 삶은 상황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전쟁터와 같다.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 감사와 원망, 상반된 생각이 밀물과 썰물처럼 교대로 밀려온다. 생존경쟁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의 승리는 보이는 싸움이 아니다. 마음 속의 전쟁에서 절망 편에 설 것인지 희망 편에 설 것인지 믿음의 결단이 중요하다. 결단에 따라 절망이 이길 수도 있고 희망이 이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이 없는 예수님이 문제 해결을 위해 요구하신 조건이 ‘네 믿음대로 되리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