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단치히(George Danzig)는 대공항 당시 스탠퍼드 대학 4학년생이었다. 당시 4학년생들은 십중팔구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다. 과수석이라도 교사 자리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단치히는 과수석도 아니었으나 졸업 시험에서 만점을 받으면 취직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단치히는 밤새 시험준비 하느라 시험장에 늦게 도착했다. 와서 보니 다른 학생들은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었다. 당황한 단치히는 조용히 시험지를 받아 들고 자기 자리로 갔다. 

그런데 시험지의 여덟 문제 외에도 칠판 위에 두 문제가 더 있었다. 시험지의 여덟 문제를 푼 뒤 칠판 위의 두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큰일이다 싶었다. 두 문제를 마저 풀지 못하면 만점은 물 건너 가는 상황이었다. 시험 시간이 다 끝나도 포기할 수 없었던 단치히는 교수에게 두 문제를 풀 시간을 더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수는 무려 이틀이나 더 시간을 주었다. 

곧장 집으로 달려간 단치히는 두 방정식을 놓고 혈투를 벌였다. 그리고 몇 시간을 씨름한 끝에 겨우 한 방정식을 풀었다. 하지만 나머지 문제는 이틀이 지나도 풀지 못했고, 단치히는 아쉬운 대로 교수에게 답안지를 제출했다. 돌아서 나오면서 취직은 글렀다고 생각했다. 그 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순간이었다. 이튿날 아침, 단치히는 사정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문을 열어보니 수학교수가 흥분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조지! 조지! 자네가 수학의 역사를 다시 썼다네!”

교수는 어리둥절해 하는 단치히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시험을 시작하기 전에 교수는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는 정신을 설파했다. “제군들, 낙심은 금물이야. 아무도 풀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있지. 심지어 아인슈타인도 그 비밀은 풀어내지 못했어.” 교수가 써놓은 두 문제가 바로 그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시험장에 늦게 도착한 단치히는 교수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리하여 불가능한 문제인 줄도 모르고 끝까지 도전한 끝에 놀랍게도 한 문제를 풀어냈다. 

단치히는 불가능을 이뤄냈다. 덕분에 그는 대공항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스탠퍼드 대학 조교수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단치히가 불가능하다는 교수의 말을 들었다면 그 두 문제를 풀기 위해 그토록 노략했을까? 필시 그도 다른 학생처럼 시험지 문제만 풀고 끝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풀지 못한 그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피하는 이유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전을 피하는 것만은 아니다. 도전이 많은 노력을 요하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다. 성공을 원하는 사람은 많아도 피나는 노력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것이 성공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이다. 바쁜 척하면서 시간을 때워 일당만 챙기는 태도 때문에 성공이 어려운 것이다.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과 절박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직장인의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용돈 벌이 위한 열정이 성공 위한 열정을 따라 올 수 없다.

힘든 것 어려운 것을 피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어려운 것을 피하고 편하게 살려는 태도는 회사의 발전에 장애가 될 뿐 아니라 자신의 정신과 육신을 좀먹는다는 사실이다. 너무 편안하면 위험 하다. 오래 전 UC 버클리에서 아메바 실험을 했다. 전혀 스트레스 없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었더니 얼마 가지 않아서 아메바가 죽어 버렸다. 이 실험은 모든 생명체, 심지어 아메바에게도 고난과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편안 하기만 하면 목숨을 잃는다. 도전은 필수이다. 

도전을 받아 들이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 어느 현장에서나 실제로 일하는 사람과 일하는 척만 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승승장구하는가? 도전을 받아들이는 사람인가 피하는 사람인가? 무능한 사람들은 도전을 피하면 쉬운 길이 나타난다고 믿는다. 도전을 피하는 것은 기회를 피하는 것이다. 도전을 받아 들이는 사람은 긍정적이며 낙관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도전을 피하는 사람은 부정적이며 비관적이다. 도전하는 사람은 일하기에 바쁘지만 피하는 사람은 변명과 핑계에 바쁘다. 성공은 변명과 핑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에베레스트 정복에 실패한 영국의 탐험가 조지 말로리의 장례식에서 그의 친구들이 그의 용감무쌍한 정신을 기리며 한 말이 있다. “에베레스트여, 너는 우리를 세번이나 꺾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너를 꺾을 것이다. 너는 더 커지지 않지만 우리는 그럴 수 있으니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도전을 계속했다. 드디어 에베레스트는 그들의 발 아래 굴복했다. 인생은 정복하느냐 정복 당하느냐 둘 중에 하나다. 상대와의 전쟁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나와의 전쟁이다. 

산은 높아지지 않지만 나는 높아질 수 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반드시 산을 딛고 산 위에 우뚝 설 수 있다. 산을 무시해야 한다. 산을 무시하지 않으면 산이 나를 무시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문제는 산의 크기에 눌리는 약한 믿음(마음)이다. 

믿음이 산의 높이에 초연해야 하고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아예 산을 없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