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하기 쉬운 때가 먹고 살기 힘든 때인가? 살기 좋아졌을 때인가? 생사가 걸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원망 불평할 생각도 시간도 없다. 위기를 넘기고 평탄한 시간이 시작되고 여유가 생기면 그 때부터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형편이 좋아져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불편하게 생각되고 귀찮게 생각지 않던 일이 귀찮아지면서 사치스런 불평이 시작된다. 겸손은 자만으로 바뀌고 감사는 불평으로 바뀐다. 거만함이 풍기기 시작하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어려울 때 다정했던 부부가 의견 충돌이 잦아지고 급기야는 이혼이란 말까지 나오게 된다. 잘될 수록 감사해야 하는데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잘 되면 더 열심히 사랑하고 충성해야 하는데 열심이 식어지고 사랑이 식어진다. 순종보다 핑계가 시작된다. 사람에게 위기는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성공했을 때이다. 배고플 때는 간절함이 있었으나 배부르게 되면서 간절함과 사모함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상이 생긴다.
무명시절의 겸손함이 유명인이 되면서 교만으로 변질된다. 성공할수록 축복하신 하나님 앞에 낮아져야 하는데 도리어 높아지는 것이다. 예수님도 위기는 군중들 앞에서 많은 기적을 베푸셨을 때였다. 기적을 본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왕으로 추대하자고 아우성쳤다. 그러자 예수님은 신속하게 그 자리를 떠나 홀로 광야로 가셨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시는 것이다. 사람들의 칭송과 환호가 당연한 현상이지만 그 현상이 주는 위험한 함정이 있다. 하나님을 소홀히 하게 되고 하나님보다 높아질 수 있다.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으로 인하여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라서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과 대적 관계가 되는 것이다. 물론 추호도 자신은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우습게 여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은 상당히 높아져 있다. 하나님 앞에 무릎꿇는 것을 보기 힘들게 된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실제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변질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배 드리는 자세, 말씀 듣는 자세, 기도하는 자세에서 간절함과 사모함이 없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태도가 지속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뜻대로 잘 되고 있는가? 일이 잘 풀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정말 정신 차려야 한다. 위험한 상황에 있는 것이다. 낭떠러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 때의 모습으로 빨리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군중의 환호가 있을 때마다 머물러 있지 않으셨다. 기도자리를 찾아 가셨다. 기도없이 모든 일들이 잘되어 가고 있다면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됨을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실패가 찾아 올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마음이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실패한 것을 본인은 부인해도 하나님은 방관하지 않으신다. 기도하는 사람은 고난을 이길 뿐만 아니라 고난보다 어려운 유혹을 이길 수 있다. 예수님은 밤새워 기도하셨고 새벽에도 기도하셨다. 새벽을 깨우는 것은 깨어 있는 사람의 특징이다. 깨어있는 사람만 유혹을 이기고 시험을 이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담대히 나가셨지만 잠을 못이긴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가기에 바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기 위해 들판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저녁 늦은 시간에 그냥 돌려 보내시지 않고 제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라고 말씀하셨다. 불가능한 지시에 당황하는 제자들에게 현재 있는 그대로를 가져 오라고 하셨다. 제자들 실력으로 가져온 것은 어린아이가 갖고 있던 오병이어가 전부였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의 축사 후 오천명에게 나눠 주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였다. 여자와 어린아이들까지 헤아리면 족히 2만명은 되는 엄청난 숫자가 배불리 먹은 것이다. 온 나라가 흥분할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 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 배타고 앞서 건너편 벳세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막6:45-46) “저물 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젖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에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 하시매”(막6:47-48).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있다. ‘홀로’이다. 예수님은 기적으로 인해 흥분한 제자들과 군중을 모두 흩으시고 홀로 남으셨다.
생애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은 홀로 있을 때이다. 여론도 조언도 참고하지만 홀로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하고 선택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군중의 환호가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다. 황홀한 환경이 아니라 하늘 나라를 바라 보아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위기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이 위기인가? 기도하지 않는것이 위기인가? 물리적인 위기가 와야 기도한다면 물리적인 위기가 계속되어야 할 것인가? 기도하지 않는 영적 위기를 다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위기는 어려울 때 오지 않는다. 위기는 잘 될 때 편안할 때 온다. 위기 의식을 마비시키는 안일 무사가 몰락의 원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