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농부가 여름 내내 흘린 땀과 눈물이 기쁨의 열매로 거두어지는 보람찬 계절이다. 계절의 가을이 있다면 시대의 가을이 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주님이 맡기신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고통과 눈물의 좁은 길을 걸어온 성도들의 궁극적 목적인 주님의 재림이 목전에 있다. 이 시대적인 가을에 나는 알곡 신앙인가 쭉정이 신앙인가 최종 점검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 살며 고통 받다가 죄 가운데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야하는 절망적인 존재였다. 농사에 비유한다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 생존을 위해 농사를 지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 죄인 된 인간의 삶이다. 죄인의 삶은 이미 절망적 종말이 정해져 있는 인생이다. 일시적인 세상적 성공이 무의미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구원은 일방적으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창조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시적으로 천지 창조에서 비롯된 은혜이다. 인생은 물론 만물이 하나님의 은혜를 벗어날 수 없다. 구원이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구원 받은 사람만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서도 은혜를 모르기 때문이다. 은혜를 아는 순간부터 놀라운 삶이 시작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 속에 살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인데 그 본분이 구원을 받은 사람만 알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 받으면 그 감격과 기쁨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한다. 감사는 하나님도 기쁘시지만 구원받은 당사자는 말할 수 없는 감격에 살게 된다. 그 감사와 감격의 사람은 어떤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서도 기쁨이 넘치는 사람을 가능하게 한다. 모진 매를 맞고도 빌립보 옥중에서 감옥이 떠나갈 정도로 찬양과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기쁨 때문이다.
문제는 감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상황과 환경 조건이 아니라 구원에 있다는 것이다. 구원이 불확실할 때 모든 상황과 환경이 문제가 된다. 너무 쉽게 상황과 환경에 흔들리고 불행스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구원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감사는 상황과 환경을 합리화 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감사는 논리적 설득과 이론적 해석으로 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다. 은혜이신 하나님을 전인적으로 체험하는 사건이다.
어떻게 보면 매우 쉽고 어떻게 보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식적 스터디가 아니라 영적 체험이기 때문이다. 체험한 사람에게는 매우 쉽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체험 못한 사람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감사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고 행복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주님 자신보다 우리를 위한 말씀이다.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는 사람 이상으로 행복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 예수 믿는 것이 이처럼 엄청난 사건이다.
광야 40년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생존이 불가능한 환경이 광야이다. 기적에 의해서만 생존이 가능한 광야에서 매일 매일은 기적 그 자체였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기적을 매일 체험하면서 매일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들어도 감격스러운 일인데 본인이 직접 매일 경험하고 있으면서 원망하는 것만큼 이해가 안가는 기적을 본적이 있는가
원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원망하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상황과 환경적 변화의 기적에 누구나 놀란다. 그러나 놀라움이 감사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주고 있다. 감사의 이유가 환경적 상황적 물리적 문제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존재 문제라는 것이다. 애굽에서의 출발부터 홍해를 거쳐 광야를 통과하는 동안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으나 존재는 변함이 없었다. 애굽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 심령 안에 이루어진 영혼만이 거부할 수 없는 천국의 기쁨이 넘치게 된다. 결코 육신적 문제가 아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 속에서 흘러 넘치는 성령의 생수가 환경을 초월한 기쁨과 감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육에 속한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오직 영에 속한 자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가능하다.
감사는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적 상태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감사는 강요할 수도 없고 가르쳐 줄 수도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사람만이 가능하다. 그 심령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사람은 날마다 감사의 기적이 끊임없는 기적의 삶을 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