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6:7-8)

창조의 원리(7가지 법칙과 원리) – 성경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매뉴얼이다. 피조물의 생존과 번성의 원리가 매뉴얼에 나와 있다. 원리를 요약하면 7가지 법칙과 원리가 나온다. 첫번째로 먼저와 나중 법칙이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먼저이고 피조물은 나중이다. 이 순서는 천지가 없어져도 바뀌지 않는다. 먼저의 중요성은 먼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먼저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만물의 운명이 결정된다. 심는 것이 먼저이고 거두는 것이 나중이다. 먼저와 나중 법칙은 모든 법칙과 원리에 적용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 심고 거두는 법칙에 있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스스로에게 속지 말라는 말이다. 심고 거두는 법칙과 원리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것인데 하나님께는 통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속지도 속이지도 않으시고 하나님의 법칙은 가감없이 지체없이 작동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은 각자의 선택사항이다. 결과는 반드시 본인 책임이다. 하나님의 법은 일점 일획의 착오없이 그대로 성취된다. 

스스로 속이고 속은 인생의 시작 – 스스로를 속이고 속은 사건의 시작은 선악과 사건이다. 속은 사건이 죄의 시작이다. 뱀의 말에 속은 하와는 그 말에 담긴 마귀의 생각을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면서 마귀의 생각이 하와의 생각으로 정착되어 고정관념이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이 자기 기준이 되어 매사에 나의 생각이 옳고 하나님의 말씀은 틀렸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속아서 생성된 오해가 하와의 고정관념이 된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고정관념으로 자리잡고 기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해의 기준화 – 마귀의 말에 의하여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가 인간의 내면에 본능적인 부정적 의식으로 잠재하게 되었고 그것이 매사에 본능적 거부 반응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정적 불신적 불순종 반응이 죄의 뿌리가 된 것이다. 오해로 인하여 기준의 변화가 온 것이다. 진리가 비진리가 되고 비진리가 진리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이 무시되고 마귀로 기인된 기준이 인간의 기준이 된 것이다. 그것이 <자기의>다. 

두가지 심기 –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경우가 있고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경우가 있다고 본문은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는 사람이 있고 내 생각대로 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결국 진리대로 심는 사람, 비진리대로 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진리를 따라 심는 것은 생명 있는 씨를 심은 것이며 비진리를 따라 심은 것은 생명 없는 씨를 심은 것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두가지 씨 – (존재적인 씨와 수단적인 씨) 시127:3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상급이라는 말씀에서 우리 자신이 씨이며 자녀는 열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녀 역시 결혼하여 자녀를 낳으면 본인이 씨가 되고 태어난 자식은 열매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씨의 역할이 있고 열매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열매를 보면 씨를 알 수 있고 씨를 보면 열매를 알 수 있다. 열매는 100% 씨를 증명한다. 

두가지 씨 – (존재적인 씨와 수단적인 씨) 존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들이 있다. 그 수단들이 심는 씨가 된다. 물질적 수단, 시간적 수단, 육체적 수단, 언어의 수단이 심는 것이 된다. 존재에 따라 같은 수단이라 해도 용도가 다르게 된다. 물질 수단이 심는 수단이 되어 물질 문제에 결과가 나타나고 시간적 수단이 심는 수단이 되어 시간 문제에 심는 결과가 나타난다. 각종 수단이 심는 수단이 되고 거두는 열매의 증거가 된다. 

두 존재적 씨 – 마13:37-39에 같은 밭에 두 가지 씨가 뿌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좋은 씨와 가라지 씨이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다. 좋은 씨를 뿌린 자는 인자(예수)요 가라지를 뿌린 자는 마귀이다.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뜻대로 열매를 맺게 되고 마귀의 씨는 마귀의 뜻대로 열매를 맺기 될 것이다. 어떤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느냐를 말한다. 영적 정체성을 증명한다. 일상적인 삶에서 쉬지 않고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이며 불가항력적이다. 

두 가지 용도 – 좋은 씨의 삶도 가라지의 삶도 삶의 수단이 있다. 물질적 수단 시간적 수단 육신적 수단 언어 수단 등이 있다. 씨의 종류에 따라 수단으로 사용하는 용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성령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말하고 육체를 위하여는 영적 목적이 아닌 육신적 목적을 위하여 사용된다는 의미이다. 

육적 DNA와 영적 DNA – 육신적 DNA나 영적 DNA는 씨와 열매가 100% 동일하다. 100% 동일하기 때문에 유전이 되어 종족 보존을 하는 것이다. 필연적이며 필수적인 삶의 수단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느냐가 인생의 결과를 결정한다. 생명적으로 사용되느냐 멸망적으로 사용되는냐 결과가 나타난다. 예수 영접이 중요한 이유는 영적 혈통이 달라지는 것 때문이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혈통이냐 마귀의 혈통이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