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38-40)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과 세상을 감당치 못하는 사람 – 세상이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인생의 결과는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로 결론이 난다. 문제를 이기는 사람, 문제가 이기는 사람, 마귀가 우습게 보는 사람, 마귀를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다. 인생의 현장인 세상에는 필연적으로 문제가 존재한다. 문제는 문제의 유무가 아니라 문제를 정복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다. 

승리의 표정, 패배의 표정 –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인상을 가지고 살지만 표정은 두 가지 표정이 있다. 승리한 표정 패배한 표정, 성공한 표정 실패한 표정, 행복한 표정 불행한 표정, 감사한 표정 원망스런 표정, 표정에서 천국을 볼 수 있고 지옥을 볼 수 있다. 표정에서 승리를 볼 수 있고 패배를 볼 수 있다. 나의 표정은 나의 삶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얼굴은 마음의 창문이다. 마음이 액면 그대로 얼굴에 표현되는 것이다. 얼굴이 천국의 창문일 수 있고 지옥의 창문일 수 있다. 

하나님도 마귀도 목표는 사람이다 – 믿음의 장이라고 하는 히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목적과 목표는 사람이다. 그것은 마귀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영혼 구원을 목표로 하지만 마귀는 영혼 멸망을 목표로 한다.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을 타락시키고 멸망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사 영혼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전략도 마귀의 전략도 사람을 사용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전략과 마귀의 전략의 공통점이 있다. 사람을 사용하여 사람을 구원하기도 멸망시키기도 한다. 그 전략은 한 사람 전략이다. 한 사람을 통해 다른 한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특히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게 한다. 이유는 지속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목표 인물은 누구인가 – 하나님도 마귀도 목표로 하는 인물이 같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마귀 세력이 바리새인을 비롯한 종교 세력들이 집요하게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목표로 하지 않고 믿는 사람을 목표로 하여 공격을 계속한다. 히11장 전체가 그 이야기다. 목표 인물은 믿음 없는자가 아니라 믿음 있는자이다. 

시험이 필수인 이유와 결과 – 마귀의 공격 대상이 믿음이 있는 자이며 그 믿음이 있는 자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귀의 공격을 피할 길이 없다. 시험의 목표 인물은 같지만 시험의 목적은 다르다. 마귀는 믿음을 약화 시키기 위함이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강화 시키기 위함이다. 결과적으로 시험을 이기는 자가 있고 지는 자가 있고 넘어지는 자가 있고 안 넘어지는 자가 있다.

여기와 저기 – 믿음의 사람들의 목적지는 다르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목적지는 여기뿐이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이다. 현세가 아니라 내세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좋은 것은 더 좋은 곳을 말한다. 더 좋은 곳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이다. 여기에 있는 이유는 저기 때문이다. 여기가 저기를 갈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시간이 중요한 것은 저기 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저희 – 우리의 존재 목적이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저희를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중요하다. 저희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다. 우리는 그 구원을 증거하는 사람이다. 구원을 증거하는 사람이 없으면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저희가 믿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는 나 자신에서 비롯된다 – 구원의 시작이 단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나 한사람이 없으면 우리가 없다. 우리 모두는 나 하나가 있을 때 존재한다. 우리의 구원 역시 내가 구원 받았을 때를 말한다. 나의 구원이 먼저 확보되고 확인되어야 한다. 나의 구원이 중요한 이유는 내가 소속한 공동체가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 한사람의 중요성 – 하만 한사람으로 인하여 유대 민족 전체가 죽게 되었을 때 에스더 한사람 때문에 살게 되었다. 아합 한사람때문에 백성 전체가 죽게 되었으나 엘리야 한사람으로 인하여 살게 된다. 첫째 아담 한사람 때문에 인류 전체가 죽게 되었으나 둘째 아담인 예수로 인하여 살게 되었다. 

십자가와 린치핀(Linchpin) – 린치핀은 마차 바퀴를 축에 고정시키는 작은 못이다. 아주 작은 핀이 마차를 움직이는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십자가야말로 인류를 천국으로 옮겨주는 유일한 마차와 같은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힌 못이 린치핀인 것이다. 

린치핀은 빠지면 안된다 – 누구든지 십자가를 지고 좇아오라고 하셨다. 성도는 누구나 몸된 교회에 못박혀 있어야 한다. 주어진 임무에 못박혀 끝까지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수시로 빠지는 사람은 린치핀 역할을 할 수 없는 사람이고 십자가를 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은 특정한 사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