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3:15)

상황의 지배와 마음의 지배 – 인생은 정복 전재이다. 적어도 인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문제를 향하여 끝없이 도전해야만 하는 숙명적 존재이다. 문제를 정복하지 않으면 문제에게 정복 당하는 수모가 되고 그것은 실패로 규정된다. 문제가 문제가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부터 해결이 되어야 한다. 문제가 문제되는 이유는 마음의 문제 때문이다. 문제 정복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문제가 주는 마음의 부담을 극복하지 못하면 문제 정복은 어렵게 된다. 마음의 지배가 중요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 – 내세적인 천국이 현세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에 실제하고 있는 상태가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이다. 우리 안에 그 하나님의 나라의 형태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것과 마시는 것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의 사람은 하나님에게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 칭찬을 받느니라(롬14:17-18) 천국의 존재는 분명하게 구원받은 사람의 영속에 현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평강의 임재 – 그리스도의 평강의 임재는 단순한 감정의 평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영의 임재를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영의 임재는 구원받은 심령 안에 임재한 성령을 말한다. 성령의 임재, 평강의 임재 형태로 나타나는데 감정적 평안과 다른 점은 상황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영적 평강을 말한다. 감정의 평안은 혼적 현상이고 외적 상황을 초월한 영적 평강이 성령의 임재의 현상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의 임재는 천국의 임재이다 – 영적 평강은 구원의 실제이며 천국의 실제적 임재이다. 내세적 천국이 현세적으로  우리의 영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롬8:9).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다는 말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말이며 그 사실은 우리 역시 그의 영으로 인하여 다시 산다는 것이다.(롬8:11) 하나님의 영생이 현재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영적 평강과 혼적 평강 – 혼적 평강의 특징은 이성적 평강으로 상황에 상태에 의한 상대적 평강이다. 상황이 문제없는 상태일 때 호전될 가능성이 보일 때 비로서 안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평강은 상황을 초월하고 이성의 판단을 초월하는 평강을 말한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나의 영에 평강을 주시는 것이다. 이성이 이해할 수 없는 평강이 나의 영 속에 직접 역사하는 것이다. 빌4:6-7에서 문제로 인하여 염려하는 기도의 결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역사가 나타난다. 

영의 지배와 혼의 지배 – 혼(이성)이 영을 지배하는가 영이 혼(이성)을 지배하는가 이성은 영을 이해할 수 없고 영향을 줄 수 없다. 이성은 영적 존재의 영향을 피할 수가 없다. 영이 혼을 지배하고 혼(이성)은 육신을 지배한다. 마귀가 가룟 유다 마음 속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어준 후 유다는 그 생각에 의해 움직인다. 가룟유다는 그 생각이 마귀의 생각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다.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 – 광야 40년은 기적의 40년이었다. 매일이 기적이었다. 이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40년 동안 철저히 원망한 사람들이 있다. 잡족이다. 그들은 이방인으로 애굽에서 따라 나온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성적 판단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이미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었다. 불신앙적 세상의 영에 잡혀있는 그들은 시종일관 불평과 원망을 일삼았다.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의 영과 생각의 상태가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상황 분별과 생각 분별 – 상황이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를 분별하기 전에 먼저 분별할 일이 있다. 내 생각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생각이 영의 생각이냐 육의 생각이냐를 분별할 수 있는가. 성령이 주는 생각이 있고 악한 영이 주는 생각이 있다. 악한 영의 지배되는 사람은 어떤 상황이든지 영적 성향에 따라 분별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분별할 수 있을 때 상황 분별을 정확히 할 수 있다.모든 상황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하나님의 의도를 무시한 분별은 무지한 분별이다. 

한몸으로 부르심 – 하나님의 부르심은 구원의 부르심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님과 한 몸 될 때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며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생명의 관계이며 모든 것이 가능한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