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36:5-16) 

두가지 기적 – 감사하는 기적과 원망하는 기적이 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기적의 주인공이 있고 원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원망하는 기적의 주인공이 있다. 감사하는 기적의 주인공으로 살든지 원망하는 기적의 주인공으로 살든지 사람은 반드시 두 가지 중 하나에 속할 것이다.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이 있고 원망이 불가능한 상황이 있다. 

창조의 STORY, 광야의 STORY – 본문은 두 가지 상황이 등장한다. 창조의 상황과 광야의 상황이다. 두가지 상황의 공통점이 있다. 창조 전의 상황과 광야의 상황이 같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같다. 창조 전 상황은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가운데 있는 전혀 아무것도 없었다. 광야 역시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창조 전의 상태, 광야의 상태는 죄인의 상태와 같다. 죄인은 죽음이 결정된 상태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이다.

창조의 기적, 광야의 기적 – 창조의 기적과 광야의 기적의 공통점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이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천지 창조와 광야의 기적이 동일성을 갖는다. 창조와 광야의 기적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이 있는 상태로의 변화는 창조주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은 은혜이다 –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이 있는 상태로의 변화는 피조물의 역할이 완전 배제된 하나님의 전적 은혜라는 것이다. 구원 역시 인간의 노력이 완전 배제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한한 것 없고 할 수도 없는 존재가 피조물과 구원받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있게 하고 모든 것을 하시고 모든 것을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은혜 일수 밖에 없는 숙명적 은혜의 삶이 모든 피조물의 삶이다. 

광야 40년은 기적의 40년이다 – 인생의 시작에서 끝까지, 광야의 시작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기적의 연속이었다. 하나님의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과 은혜로 사는 존재가 광야에 있는 존재이다. 광야의 삶은 매일 매순간 발걸음 마다 기적의 연속이었다. 은혜의 지속, 공급의 지속, 창조의 지속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도저히 원망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원망했다. 

원망의 원인 – 상황과 환경과 조건이 이해가 불가능하고 설명이 부족하고 이론적 해석이 불가능하고 논리적 설득이 부족해서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현장에서 직접 기적을 보았고 먹어 보았고 몸으로 경험했다. 부인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 경험했기 때 문에 기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성으로는 아는데 은혜를 모르는 것이 문제다. 문제는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존재문제라는 것이다. 몸으로 체험했으나 영적으로는 체험은 못한 것이다. 

감사의 원인 – 감사는 상황과 조건에 대한 감정의 반응이 아니고 이성적 판단과 동의가 아니며 토론에서 도출된 합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설명과 설득으로 얻어진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성적 판단과 상황의 공감대 형성에 의한 감사는 분명 인위적 감사이다. 이러한 감사의 종류에는 교양적 감사가 있다. 자신의 인격과 예의에 기초한 교양 수준의 감사의 표시다. 또한 상대 평가와 비교를 통하여 자기 합리화 내지 자기 위로를 위한 감사가 있다. 

감사의 원인 – 감사의 근거는 외적 사건이 아닌 내적 사건에 있다. 외적으로 발생한 기적이 있다. 홍해를 건너고 요단을 건너고 여리고를 무너뜨린 사건들이 하나님에 의한 기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불과하다. 감사는 일시적인 외적 사건이 아닌 영구적인 내적 기적이 근거가 된다. 구원은 내적인 생명의 역사이며 존재 변화로서 영원히 변할 수 없고 빼앗길 수 없는 기적이다. 

감사의 창조성(생산성) – 창조주 되신 하나님이 내 안에 내주 하시는 증거가 영적 생산성에 있다. 끊임없는 감사와 기쁨이 솟아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자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리라는 말씀처럼 내 속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것이다. 상황에 상관없이 끝없이 솟아나는 생수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생명의 돌파성 – 영생은 오래 사는 것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죽음을 돌파하는 생명을 말한다. 믿음은 불가능을 돌파하는 믿음을 말하고 기쁨은 고통을 돌파하는 기쁨을 말하고 소망은 절망을 돌파하는 소망을 말한다. 하나님의 생명은 모든 불가능을 돌파하는 능력을 말한다. 

두 종류 구원 – 지식적 구원 : 이성적으로 믿는 구원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구원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지식적 구원은 가짜 구원이다. 전혀 존재적 변화가 없는 형식적 구원에 불과하다. 생명적 구원은 영적 변화, 존재적 변화가 동반되는 사건이다. 실감나는 구원이 아니면 실감 안나는 구원의 삶이 있다. 진정한 구원은 실감나는 구원을 말한다.